[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르네상스형 멀티복서, 국내 라이트급 챔피언 박성우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4/27 [11:26]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르네상스형 멀티복서, 국내 라이트급 챔피언 박성우

조영섭 기자 | 입력 : 2020/04/27 [11:26]

얼마 전 기자는 전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 박성우를 취재하기위해 그가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의정부를 찾았다. 박성우를 만난 기자는 부용산에 위치한 조선 세조때의 정승 신숙주 묘소로 가자고 했다. 

 

신숙주는 절개를 지킨 성삼문과 달리 변절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힌 인물이지만, 조선왕조 5백년 역사에 9차례 장원 급제한 이율곡과 더불어 양대산맥을 형성한 천재학자로 중국어, 여진어, 몽골어, 위구르어, 아라비아어, 인도어는 물론 설총의 이두까지 7개국어에 능통했던, 지금으로 말하면 글로벌 인재였다. 현장에 도착한 기자는 사육신의 충절이 빛을 더할수록 그와 반비례로 변절자로 회자된 그의 묘지를 바라보면서 많은 상념에 잠겼다.

 

▲ 신숙주 묘지에서 박성우챔프     ©조영섭 기자

 

노자의 도덕경에는 감행하는데 용감한 자는 죽임을 당하고 감행하지 않는데 용감한 자는 살아남는다고 했다. 사육신이 절의를 지키고 죽은 것 과 달리 새 임금에게 빌붙어서 부귀영화를 누린 학자로 그간 세간의 평가를 받은 신숙주는 세조와 인연을 맺은 과정을 유추 해보면 다소 억울한(?) 면도 있을듯하다. 

 

1452년 단종이 즉위하고 수양대군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로 가게될 때 서정관(書狀官)으로 낙점되어 동행하면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된다. 사실 이는 한명회가 신숙주를 수양대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사전 포석 이었다. 이후 신숙주는 5개월간 먼 이국땅을 수양과 함께 넘나들면서 의기투합하는 혈맹관계로 발전한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1417년 생으로 나이도 같았다. 한사람은 기개가 넘치는 왕자요, 한사람은 차분한 학자였던 이들의 만남은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조선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신숙주는 개인적으론  불운한 인물이었다. 큰아들이 22살에 요절했고, 차남 신면은 이시애의 난 때 반군에 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탐욕이 많았던 4남 신정은 성종 때 결국 사약을 받고 죽고 만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도 20세에 둘째인 예종도 재위 1년만인 19세에 요절하고 말았는데 이들의 업보에 따른 인과응보일까?   

 

▲ 박성우 대표 역술인 박윤수 이해정 챔프(좌측부터)     ©조영섭 기자

 

부용산에서 내려온 기자와 박성우는 의정부 모처의 일식집에서 의정부에서 철학관을 운영했던 역술인으로 말보다 행동이 더 민첩한 복싱인 박윤수, 의정부에 거주하고 있는 국가대표 출신 이해정과 함께 도란도란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한국체대 출신의 이해정은  82년 서울 아시안게임 과 83년 제11회 아시아 선수권  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라이트 미들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복서로 현역시절 82년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김의진(군산대)과 84년 LA 올림픽 금메달 신준섭(원광대), 그리고 88서울 올림픽 금메달 박시헌(경남대), LA 올림픽 출전한 안달호(일우공영), 83년 세계선수권 도전자 대회에 한국대표로 출전한 이성목(상지대)을 각각 꺽은 전력이 있는 정통파 복서로 이 시대 아시안게임 고교생 마지막 금메달리스트다. 은퇴 후 서울 당곡중 코치로 활동하면서 후에 투타임 WBC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지인진을 발굴,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번 주 복싱스토리의 주인공 박성우는 79년 의정부 태생으로 영화배우처럼 준수한 외모, 환하고 시원한 웃음 넘치는 자신감이 트레이드 마크다. 현역시절 아기자기한 스몰 권투 보다는 선이 굵은 호쾌한 복싱으로 묵직한 강펀치는 일품이었지만, 신인왕전 때 입은 오른손 골절 부상으로 상승세에 발목이 잡혔던 불운의 복서였다.  

 

어릴적 그의 꿈은 기계공학 박사였다. 신숙주가 7개국어를 터득했다면, 그는 방랑벽이 심한 아버지 때문에 의정부, 노량진, 월계동, 화곡동, 광명시 등 7개 동네를 전전하면서 주먹으로 7개 구역을 평정한 타고난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였다. 돌고 돌아 의정부에 정착한 박성우는 고1때 의정부 대한체육관에 입관한다. 그후 99년 전국 신인대회 라이트 미들급에서 우승하면서 세종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문무를 겸비한 인텔리 복서에 해병대 출신의 특이한 이력을 지닌 복서다.   

 

▲ 한국 라이트급 타이틀전에_서 길기오와 타격전을 펼치는 박성우(좌측) 

 

김호, 이회택, 허정무가 축구선수 해병대 계보라면 박성우는 김진길(대원체 관장), 김선길(한국체대), 백종권(WBA 라이트급 챔피언), 정동호(오산복싱 연맹 부회장)로 이어진  복싱계 해병대 계보의 한축을 담당한 복서다. 박용민 관장에 의해 새천년 4월 21세에  프로에 데뷔하게된 박성우는 리드미컬한 스텝에 야성미 넘치는 공격으로 4연속 KO퍼레이드를 펼치며 이후 한국복싱의 미래란  호평을 받으며 2003년 신인왕전 라이트급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만 오른손에 치명적인 골절상을 당한다. 거친 원석에서 다듬어진 보석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낭패를 당한 것이다  

 

그후  레프트 하나로만 경기를 펼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2004년 8월17일, 필리핀 세부로 날아가 2002년 4월 전 WBA 라이트급 챔피언 백종권과 맞대결을 펼쳤던 렉스 마르잔과 대결에서 원정경기 임에도 불구하고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광적인 필리핀 관중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마치 자신의 홈링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처럼 시종일관 의기양양 기세등등하게 경기를 펼친다. 3회 종반 접전중 상대의 좌우연타에 걸려 큰 대미지를 입는 녹다운을 당했지만 전열을 정비 4회부터 반격을 개시 결국 5회에 통쾌한 KO 펀치를 날려 경기를 메조지 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이어진 2004년 11월28일, 길기오와 한국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벌인다. 길기오는 99년 7월 한국 수퍼밴텀급 챔피언 출신으로 2000년 2월 일본에서 수퍼페더급 챔피언 야마토 신과 동양타이틀 결정전에서 잘 싸우고도 12회 판정으로 패한 베테랑복서 였지만 박성우는 한수 위의 기량으로 레프트 하나로만 경기를 펼쳐 5회KO승, 1차방어전에서도 장동근(부산광명)에 역시 1회 KO승을 거두며 11전 전승에 7KO승을 기록, 의정부에 카마쵸로 급부상 한다.  

 

▲ 의정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박성우 부부     ©조영섭 기자

 

그리고 2005년 일본 원정이 결정된다. 상대는 필리핀의 세계랭커이자 동양 라이트급 챔피언인 라우 렌트를 꺽고 정상에 오른 17승(12KO승) 2패를 기록한 일본의 이나타 지카시로 178cm의 장신에 팔을 완전히 내린 상태에서 다양한 궤도의 변화와 속도로 공격하는 플리커 잽(Flicker jap)잽이 일품인 복서로 동양인으로 흑인처럼 유연성을 겸비한 수준 높은 기량을 보유한 복서였다.

 

하지만 박성우는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고 타격전을 펼치다 5회에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지만 오른손 부상 여파에 의한 결정타 불발로 찬스를 놓친 후 8회에 상대의 반격을 허용, 통한의 역전 KO패를 당한다. 하지만 그는 정직한 패배에 당당했다. 그 후 2연속 KO승을 거두며 힘찬 약진을 시작했지만, 프로모션이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 법인데 하늘을 볼 수 없는 열악한 현실을 깨닫고 14전 13승(9KO승)1패를 끝으로 만 25세에 복싱을 접는다. 

 

그리고 방향전한을 한다. 2006년에 의정부에 복싱히어로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후진양성에 몰입한 그는 이후 수원과 서울에 4개의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최연소 프로모터로 활동하며 많은 경기를 주최하면서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근자에 이르러 복싱계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자 5인가구의 가장인 그는 호구지책(糊口之策)을 면하기 위해 부동산 업계에 투신한다. 하지만 체육관은 트레이너들에게 맡기면서도 유망선수 두세 명을 틈틈이 집중 조련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 사업가로 변신한 라이트급 국내 챔피언 박성우 

 

현재 그는 부동산 컨설팅에서 유망한 컨설턴트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 억대 연봉을 창출하고 있는 사업가로 변신에 성공했다. 현재 한국 스포츠계에서 흔히 갈라파고스섬에 비유되는 복싱은 아마 프로 공히 취약종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과거의 한국 스포츠에서 복싱은 격동의 근현대사 그때 그 시절, 서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한 애환의 역사가 숨어있고 눈물과 환희와 대서사시가 감춰져있는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종목이었다. 

 

아마복싱은 86년 전체급을 석권해 기네스북에 등재됐고, 프로복싱은 65년 서강일의 첫 세계타이틀 도전이후, 반세기도 안되어 43명의 세계챔피언에 의해 무려 52차례나 챔피언 행진곡이 울려퍼진 효자종목 이었다. 하지만 반전되어 침체기에 접어든 작금의 현실에 비처볼 때 박성우의 변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말한다. 복싱이나 인생 등 세상사 모든 일이 분석만 해서는 안되고 직접 부딪치면서 노하우를 체득해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있다고. 스코틀랜드 속담에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한 자루 촛불을 켜라’는 말처럼 척박한 상황에서도 암울한 현실에 맞서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으로 자신의 사업영역을 조금씩 확대, 구축해 나가는 그를 보며 격려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세상에는 뛰는 놈, 나는 놈, 엄청 많지만 쉼없이 전진하는 자에게는 당해내는 놈 없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홈페이지 하단 메뉴 참조 (ad@mhj21.com / master@mhj21.com)
  • 도배방지 이미지

  • 끈아 2020/04/29 [10:39] 수정 | 삭제
  • 챔피언에서 사업가로 성공 ㅎㅎ 정말 멋지십니다. ㅎㅎ 그리고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검흔 2020/04/28 [21:12] 수정 | 삭제
  • 박성우 선수 르네상스 복서... 대단한선수인것 같아요 선수생활이 끝나고 사회에서도 대단한분이 되신것 같아서 존경스럽습니다
  • 와다 2020/04/28 [16:29] 수정 | 삭제
  • 기사 잘 읽었습니다. 역시 조영섭 관장님의 글은 감칠맛이 있습니다.
  • 은성 2020/04/28 [01:04] 수정 | 삭제
  • 아침 출근길에 반가운 기사를 접하고 ......이제사 시간이 되어 댓글을 남깁니다 언제나 해박한 필체를 자랑하는 조영섭 기자의 날카롭고 맛갈스런 표현으로 박 성우 선수의 기사가 더 잘 묘사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선 굵은 복싱을 하던 박 성우 관장이 스트리트 파이터였다는 사실은 본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네요. 이 해정 박 윤수 선수의 사진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창스트 2020/04/27 [20:36] 수정 | 삭제
  • 항상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김은수 2020/04/27 [19:20] 수정 | 삭제
  • 멋진 선수입니다.. 우연히 경기본적이 있었는데.. 테크닉이 정말 훌륭했었던.. 어려운 중개사 자격까지 ㄷㄷㄷㄷ
  • 고민대가 2020/04/27 [16:51] 수정 | 삭제
  • 멋진 기사 입니다^^! 잘 봤습니다.
  • 사필귀정 2020/04/27 [16:42] 수정 | 삭제
  • 복싱은 물론이고 스포츠계와 역사까지 해박한 지식에 감동을 받네요~침체된 복싱계에 이런 기사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을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시는 조영섭 기자겸 관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단지 2020/04/27 [15:33] 수정 | 삭제
  • 좋은글 즐감하였습니다.^~^
  • 단지 2020/04/27 [15:33] 수정 | 삭제
  •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 단지 2020/04/27 [15:31] 수정 | 삭제
  • 좋은글 즐감하였습니다.^~^
  • 단지 2020/04/27 [15:31] 수정 | 삭제
  • 좋은내용 늘 감사합니다.^~^
  • 최문성 2020/04/27 [13:58] 수정 | 삭제
  • 박성우 관장님의 일화는 예전에도 어느정도 알았는데, 다시금 되새겨 읽어보니 더욱 대단하심을 몸소 느낍니다. 젊은 복싱인들에 귀감이 되어주시는 멋진 선배임에 감사드립니다. 하시는 모든 일들 다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 꿀오소리 2020/04/27 [13:29] 수정 | 삭제
  •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
  • 동수 2020/04/27 [13:26] 수정 | 삭제
  • 언제나 생동감있는 스토리 고맙습니다
  • 압천 2020/04/27 [13:23] 수정 | 삭제
  • 전설의파이터 상남자 박성우관장님 팬입니다
  • 베냐민 2020/04/27 [13:18] 수정 | 삭제
  •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한 자루 촛불을 켜라’ 인상적이네요!! 멋진 복싱인들의 이야기 흥미롭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터프주성 2020/04/27 [12:51] 수정 | 삭제
  • 신인왕전때부터 지켜봤었는데 오른손 골절부상만 아니였어도 세계챔피언 감이였는데 너무 아쉬운 선수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업가로서 세계챔피언이 되길 응원합니다
  • 복싱원드 2020/04/27 [12:46] 수정 | 삭제
  • 참 아까운선수였군요 얼핏 스쳐본것도 같구요 복싱만하다 다른직업으로 전환한다는게 쉽지않은데 그 도전이 부럽네요. 신숙주 그렇게 많은 외국어를~~~ 이제야 알았네요 좋은 글 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박성우 2020/04/27 [12:38] 수정 | 삭제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상기 2020/04/27 [12:29] 수정 | 삭제
  • 좋은 내용을 담아주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박태진 2020/04/27 [12:20] 수정 | 삭제
  • 잘읽었습니다^^
  • 신성수 2020/04/27 [12:17] 수정 | 삭제
  • 박성우...멋진 복서....운동선수로서 세계 챔프에 오르진 못햇지만...대단한 선수는 확실하다....또한 사회로 진출하여 부동산으로써 억대 연봉을 버는데 성공한 사례가 보기 참 좋다.....이런 저런 복싱선수 출신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쏟아내는 조영섭 관장의 글이 또 새롭다....다음편이 기대 된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