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최초의 헤비급 금메달 김유현과 후배들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3/30 [23:04]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최초의 헤비급 금메달 김유현과 후배들

조영섭 기자 | 입력 : 2020/03/30 [23:04]

코로나19 광풍이 여전히 스멀거리는 지난 주말, 현 대한복싱협회 상임 심판위원인 현천일 선배와 함께 강원도 원주로 취재 여행을 떠났다. 현천일 선배와 인연은 나의 복싱지도자 원년인 1989년 용산공고 재직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교에서 무보수로 아이들을 지도한 기자가 자택에서 아이들을 합숙시키는 장면을 목도한 현천일은 그 후 심판·코치 관계를 초월해 끈끈한 전우애(?)로 반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심영자 회장이 총수로 있는 88체육관에서 기자가 받은 급료는 79년 10.26 사태 때 김재규 부장의 수행비서 박흥주가 만찬에 참석한 두 여인에게 전달한 일금 20만원 이었다.

 

▲ 현천일 상임심판위원과 김유현챔프(우측)   ©조영섭 기자

 

현천일은 기자가 매주 연재하는 ‘복싱스토리’에서 강원도 복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부족 하다고 건의를 해 기자가 받아들이면서 속전속결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강원도 원주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지용주의 본향으로 이 분은 1976년 은퇴 후 이듬해 원주에서 복싱 지도자로 발을 디딘 후 후배들을 육성했고 78년 당시 원주농고 1학년 김유현을 발탁, 조련했다. 이를 토대로 김유현은 국내복싱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86년.서울) 헤비급에서 정상을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김유현은 현재 원주시 단계동에서 치악산이라는 포장마차를 23년째 운영하고 있다. 

 

헤비급은 70년 김상만, 78년 김기춘, 82년 소배원이 획득한 동메달이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이곳에서 아시아선수권 2연패의 금자탑을 쌓은 전인덕과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윤봉기 관장, 83년 청소년대표 출신의 신명수(상지대)등이 기자의 연락을 받고 포장마차로 차례차례 합류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김유현이 78년 원주농고에 입학할 때 그의 주 종목은 배구였다. 190cm의 장신의 사우스포인 그는 돌고래처럼 치솟는 탄력 있는 점프력에 강스파이크로 무장한 전도유망한 배구선수였다. 하지만 사촌형의 권유로 복싱으로 전향한 김유현은 졸업반인 80년 라이트 헤비급에서 송곳같은 라이트잽에 이어 바위처럼 묵직한 레프트카운터로 상대를 제압하며 4관왕을 차지하면서 각광받는다.  

 

▲ 최초의 아시안게임 헤비급 금메달 김유현 (사진제공=대한체육회)

 

81년도 한국체대의 러브콜을 외면하고 박형춘 선생이 창단 지휘봉을 잡은 경희대로 진학한 그는 그해 국가대표로 발탁 한일 국가대표 대항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주목을 받는다. 일본팀의 주장인 사토와 맞대결, 2회 회심의 일격을 날리자 상대는 총 맞은 노루처럼 일장기가 펼쳐진 링 바닥에 푹 하고 쓰러지면서 실신해 곧바로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직행했다.  

 

생중계로 이 경기를 관전한 대통령 전두환은 축전을 보내며 분위기를 띄우자 당시 현장에서 경기를 관전한 한 사업가가 나타나 경기 후 조철제 전무에게 선수단 회식을 건의했지만 조 전무는 선수들이 체중조절을 이유로 귀국해서 만나자고 한 후 헤어졌다. 이 사업가가 당시 삼우트레이딩 유병언 회장이다. 이후 대한체육회가 있는 무교동 일식집에서 선수단과 임원 등 30명이 모여 회식을 마친 자리에서 유병언 회장은 흔쾌히 조철제 전무 에게 천만 원을 전달했다.

 

조 전무는 회식비 230만원을 제외한 770만원을 한·일전 명승부의 일등공신 김유현에게 전달했고, 김유현은 한사코 사양해 그 돈을 복싱 기금으로 입금시켰다. 이 시드머니는 97년 김승연 회장이 퇴임할 때 17억 6천만원의 복싱기금으로 불어나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유병언은 일본에서 사업을 하면서 말할 수 없는 핍박과 설움을 당해 가슴에 울분이 쌓여 있었는데 그 응어리를 우리 김유현 선수가 통쾌한 KO승으로 날려 버렸다면서, 자신도 태권도 유단자로써 같은 체육인임을 강조했다 한다. 후에 유병언은 프로복서 김치복 선수의 경기 때 대회장을 맡아 복싱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 아시아 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전인덕(원주시청) 우측 

 

원주복싱의 산파역을 담당한 분은 70년 아시안게임(방콕) 은메달리스트인 박형춘 선생이다. 전남 보성출신의 이분은 군생활 관계로 1963년 원주에 정착, 44회, 47회 전국체전에서 강원도 대표로 금메달(미들급)을 획득한 후 원주복싱의 대부 송영수 관장 휘하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후진양성을 병행해 지용주를 비롯, 박종목, 이명호, 이상덕, 구본욱, 황광옥 등을 베출해 이들에 의해 민들레 홀씨처럼 뿌려진 새싹들인 우광식, 김유현, 신창석, 이성목, 문지호, 김정보, 윤봉기, 전인덕, 이병국, 신명수, 강정수 등이 이후 걸출한 복서로 성큼 성장하며 원주복싱의 듬직한 디딤돌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강직한 성품에 의협심 강한 불굴의 파이터 전인덕도 원주복싱의 명맥을 연결하는 스타 복서다. 81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복싱에 입문한 그는 무려 13년의 세월이 흐른 94년 첫 태극마크를 달면서 그해 17회 아시아 선수권대회 ‘플라이급’결승에서 카자흐스탄의 술탄을 꺽고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이 금메달은 한국팀의 유일한 금메달 이었다. 이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최종결승에서 신동길(경희대)에 패해 주춤 했지만 제18회 아시아 선수권마저 재패하며 대회 2연패에 성공한 그는 96년 아틀랜타 올림픽 선발전에서도 박형연(용인대)을 누르고 출전권을 따내면서 노익장을 과시한다.    

 

전인덕은 대표팀 김성은 감독이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복서라고 치켜세울정도로 복싱 스킬이 뛰어났지만 치악산 스라소니로 불릴 정도로 밤의 세계에서 잔뼈가 굵어 법무부에서 인정한 학교(?)를 들락날락 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진 탓에 27살에 비로소 대표팀에 발탁된 복서였다. 그는 애틀란타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대표팀 코치와 불화로 96년 7월 3일 대한올림픽위원회에서 전격 제명되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켜 출전이 좌절되는 슬픈 곡절을 간직한 복서다. 

 

▲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대표(플라이급) 전인덕   ©조영섭 기자

 

이후 복싱을 접은 그는 본업인 밤의 황제로 복귀 이후 소설같은 험난하면서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15년 전 4살 연상의 지금의 아내를 만나 삶의 변곡점을 맞이하면서 순한 양 으로 재탄생해 지금은 양양에 있는 건설회사에서 이사로 재직하며 평범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기자는 이곳 원주에서 83년 청소년 대표시절 같이 합숙훈련했던 신명수(상지대)란 동료를 무려 37년 만에 상봉했다. 

 

신명수는 당시 청소년대표 선발전에서 후에 WBA, WBC 양대 기구 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김용강(유원건설)을 누르며 돌풍을 일으킨 복서였다. 당시 김용강은 후에 WBC 밴텀급 챔피언 변정일(안흥공전)을 비롯해 서정수(홍익대), 황경섭(서원대) 등 역대급 사우스포를 꺽은 왼손잡이 전문 킬러였지만, 사우스포 신명수에게는 완패를 당했다. 신명수는 83년 전국체전에서 코크급 준결에서 경북의 이경연에게 패하자 밴텀급으로 월장, 85년 대통령배 대회 결승에서 전남의 허영모(한국체대)와 맞대결해 비록 패했지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친 주인공이다.  

 

원주복싱의 대미를 장식할 윤봉기는 80년대 초반 최점환, 허영모, 김종옥과 함께 라이트 플라이급 4인방을 구축한 복서였다. 80년 김명복배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경주상고 최점환과 준결승에서 만났고, 81년 광주 대통령배에서는 전남의 허영모 와 준결승에서 만나 각각 접전 끝에 패했지만 그의 기량을 인정한 용인대 송순천 담당교수에 의해 82년 용인대에 특기생으로 입학한다. 

 

그해 킹스컵 대표선발전에서 목포대 박규관에게 일격을 당하자 83년 윤봉기는 프로로 전향했고, 그해 신인왕전 결승에서 상원체육관 명장 이형수 사범의 수제자 박영덕과 주니어 밴텀급 결승에서 맞대결해 분패하자 복싱을 접었다. 

 

▲ 신명수 전 청소년대표와 윤봉기관장(우측)   ©조영섭 기자

 

김유현, 윤봉기, 신명수, 전인덕 이들은 모두 사우스포인 지용주 스승 밑에서 복싱을 수학한 사우스포 복서라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윤봉기는 10년 후인 93년, 강원도 대표팀 코치로 컴백해 기자와 연을 맺었다. 99년도 전국체전과 대통령배에서 그가 소속된 강원도 대표인 홍무원(원주 대성고ㅡ원주시청)과 기자가 소속된 서울대표인 국나남(서울체고)과 두차례 맞대결에서 국나남이 모두 승리, 두 대회에서 수도 서울팀에 천금 같은 금메달을 안겨준 기억이 새롭다. 

 

중간에 복싱을 접은 국나남에 비해 성실한 홍무원은 이후 킹스컵(태국)과 그린힐컵(파키스탄)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부활을 알렸고,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5년 아시아선수권. 제13회 세계선수권대회,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 각각 국가대표로 출전해 난공불락 김기석(경북체고 서울시청)에게 10차례이상 맞대결에서 단 한 차례도 승리를 못하는 악재를 딛고 고귀한 성과를 거뒀다.  

 

이후 윤봉기는 일선지도자 생할을 접고 체육관장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가정적으로 윤봉기는 불운했다. 93년 결혼한 아내가 치매 4급 판정을 받은 시부모의 대소변을 받는 등 수발을 하며 모시다가 그만 그의 아내도 2015년 파킨슨 프러스 중후군(중증 장애 2급) 이라는 희귀질환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급기야 체육관 회비로는 병원비 마련이 턱없이  부족하자 작년부터 새마을금고에 청원경찰 시험에 합격, 오후 5시까지 근무를 하고 이후 밤11시까지 체육관을 운영하며 병원비를 조달하면서도 사랑과 감사, 열정과 용기를 간직한 채 웃음을 잃지 않는 건실한 윤봉기는 얼마전 원주시에서 부부 희망상을 받은 올곧은 복싱인이다.  

 

그는 2005년부터 원주시 우산동 통장과 자율방범대장을 겸직하면서 원주시장 공로패, 원주 경찰서장 감사장, 강원도지사 표창장을 받는 등 분주히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복싱인으로, 시련 속에서도 냉철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 그가 더욱더 자랑스럽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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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싱인 2020/07/18 [10:03] 수정 | 삭제
  • 앞으로 홍선수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 복싱을 사랑하는 자! 2020/07/18 [10:02] 수정 | 삭제
  • 기자님 홍선수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 복싱을 사랑하는 자 2020/07/18 [09:57] 수정 | 삭제
  • 조영섭 기자님!! 앞으로 홍무원선수는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 무원 2020/06/27 [22:29] 수정 | 삭제
  • 즐겁습니다. 아테네올림픽 8강에서 탈락하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나네요^^ 다시 그때로 되돌릴수 있다면 더 파이팅 넘치게 할수 있을것 같은데...
  • If You 2020/04/07 [14:50] 수정 | 삭제
  • 잊지말아야 할 과거의 복싱 영웅들에 대한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시련 속에서 냉철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그 모습, 지금 꼭 배워서 실천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끈아 2020/04/06 [09:54] 수정 | 삭제
  •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리고, 정망 애정이 느껴지는 글 입니다. 이렇게 영웅들을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 박태진 2020/03/31 [19:28] 수정 | 삭제
  • 윤봉기 관장님 대단하십니다!
  • 폴복싱 2020/03/31 [16:18] 수정 | 삭제
  • 항상 잊혀져가는 영웅들을 재조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배도령 2020/03/31 [14:30] 수정 | 삭제
  • 언제나 좋은정보 구성진 스토리 좋습니다~^^
  • 허브 2020/03/31 [14:00] 수정 | 삭제
  • 잘읽었어요 ~~
  • 그린샘 2020/03/31 [10:54] 수정 | 삭제
  • 복싱에 대한 사랑이 담긴 아름다운 글이네요. ^^
  • 은발 2020/03/31 [10:19] 수정 | 삭제
  • 가슴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 꿀오소리 2020/03/31 [09:38] 수정 | 삭제
  • 기사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감사유 2020/03/31 [09:21] 수정 | 삭제
  • 복싱역사를 꿰뜷는 해박함으로 주인공을 조명해주고 기사를 읽는 독자에게 그림을 그려주듯 이해시키는 설득력이 훌륭합니다. 멋진 조영섭기자님, 관장님, 존경합니다.
  • 단지 2020/03/31 [08:38] 수정 | 삭제
  • 유익한 기사 잘보았습니다. ^~^화이팅
  • 베냐민 2020/03/31 [08:37] 수정 | 삭제
  • 삶이 녹아있는 복싱이야기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조영섭 관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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