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르상티망(시기심)의 정명(正名)

박항준 | 기사입력 2020/02/25 [11:10]

[박항준 칼럼] 르상티망(시기심)의 정명(正名)

박항준 | 입력 : 2020/02/25 [11:10]

프리드리히 니체는 약자가 강자에게 품는 질투, 열등감, 증오 즉, 시기심을 ‘르상티망’이라 정의한다. 그는 이 시기심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하고, 가난한 사람이 천국에 간다라고 하는 주장을 이끌어 낸다고 주장한다. 

 

니체의 주장은 이렇다. ‘원래 태생적으로 도덕적이지 않는 인간은 강자에 대한 반감이 생기게 되는데, 오히려 이러한 가치관을 전도시켜 이른바 ‘도덕적 선악의 관념’이 생겨나게 된다.’라는 것이다. 그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심리를 ‘르상티망’이라고 명명했다.

 

니체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르상티망’이 일부에 의해 악용된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근대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표어가 열등감과 증오, 시기심인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표어였다. 

 

공산주의자들이나 혁명가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을 피착취 계급이나 하위계층에 주입함으로써 사회혼란을 일으키고, 폭력혁명을 통한 정권창출이라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 것도 대중을 대상으로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전략이었다.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누구나 잘 사는 사회’나 ‘지속가능 사회’의 개념도 ‘르상티망’을 이용하는 현대 정치인들의 주요 구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세뇌된 우리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유’와 ‘평등’의 삶을 강력하게 추구하게 된다. ‘자유’와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벌고, 노동을 하며 성공을 꿈꾼다. 멋진 소비를 통해 사회적 과시를 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을 만끽한다고 느낀다. 

 

기업은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기심을 자극하여 소비를 촉진시키는 마케팅을 수행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명품 시계나 핸드백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자유’며 ‘평등’을 누리는 삶으로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삶의 기준이 급변하는 이 시대 ‘자유’와 ‘평등’은 더 이상 우리의 삶에 ‘르상티망’을 자극하지 못한다. 디지털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고,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에 더 이상 이러한 선전구호에 속지 않는다. 국민이, 소비자가 똑똑해졌다는 의미다. 

 

국민의 사회적 불평과 불만이 빈부격차라는 결과가 아닌, 공평과 형평이라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구시대의 ‘르상티망’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르상티망’을 취해야 한다. 그간 권력과 기업으로부터 세뇌되어 끌려 다녔던 ‘자유’와 ‘평등’이라는 구호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삶을 자극하는 새로운 ‘르상티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수명이 다한 ‘자유’와 ‘평등’을 대신해 새로운 시대 우리의 ‘르상티망(시기심)’을 자극하는 사회적 목표는 ‘공유’과 ‘형평’이 될 것임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사회적 담론화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공유’와 ‘형평’은 헤겔의 변증법적 추론에 의해 유추되는 ‘자유’와 ‘평등’의 안티테제(antithese)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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