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행운목 / 유홍준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2/10 [09:27]

[이 아침의 시] 행운목 / 유홍준

서대선 | 입력 : 2020/02/10 [09:27]

행운목

 

행운은 토막이라는 생각

 

행운은-고작

한 뼘 길이라는 생각

 

누군가 이제는 아주 끝장이라고

한 그루 삶의

밑동이며 가지를 잘라 내던졌을 때

행운은 거기서 잎이 나고 싹이 나는 거라는 생각

 

잎이 나고 싹이 나는 걸

발견하는 거라는 생각

그리하여 울며 울며 그 나무를 다시 삶의 둑에

옮겨 심는 거라는 생각

 

행운은, 토막이라는 생각

행운은-집집마다

수반 위에 올려놓은 토막이라는 생각 

 

#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을 “행운목” 토막에 싹을 틔우듯 ‘세런디피티(serendipity)’의 행운을 놓치지 않은 과학자가 있었다.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은 열려진 창문으로 날아들어 온 푸른곰팡이가 자신이 배양하던 포도상구균을 죽인 배양접시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포도상구균을 죽인 푸른곰팡이를 버리지 않았다. 평소 항균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실패처럼 보였던 그 배양접시에서 ‘페니실린’ 이라는 행운의 “잎이 나고 싹이 나는” 연구에 도전했다. 실패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 시킨 플레밍의 ‘페니실린’은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수많은 부상자를 살렸다.   

 

“누군가 이제는 아주 끝장이라고/한 그루 삶의/밑동이며 가지를 잘라 내던졌을 때/행운은 거기서 잎이 나고 싹이 나는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실패의 모습으로 재앙처럼 던져진 상황을 그냥 포기하거나, 외면하거나,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재앙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세런디피티(serendipity)의 가능성을 찾아 “행운목”처럼 물을 주고 싹을 틔워 보는 것이리라. 

 

세런디피티(serendipity)는 우리가 미처 찾을 생각도 못하고 있을 때, 귀중한 것을 발견하는 우연한 기회를 의미한다. 세런디피티는 생각의 폭이 좁은 사람에게는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전혀 상관없고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까지도 관심의 영역을 넓히고 그 속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눈여겨 볼 자세가 되어 있다면, 행운은 “고작 한 뼘 길이의” 나무토막 같아도 “잎이 나고 싹이 날거라는 걸” 믿는 마음인 것이다. 대책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공략은 우리의 삶을 위축 시킨다. 그럼에도 새로 출현한 바이러스를 응시하며 대처 전략을 찾아내려는 분들이 있기에, 그 분들의 연구 속에 ‘세런디피티’가 “행운목”처럼 찾아와 획기적인 치료의 “잎이 나고 싹이 나는” 날이 오길 믿어보는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MJ포토] 워크아웃 다름없는 두산중공업, 노조는 불안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