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사노동자’는 왜 산재가 안 되나요?”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인터뷰

성상영 기자 | 기사입력 2020/01/17 [17:45]

[인터뷰] “‘가사노동자’는 왜 산재가 안 되나요?”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인터뷰

성상영 기자 | 입력 : 2020/01/17 [17:45]

가사(家事)’는 쏙 뺀 근로기준법 11

가사근로자법 발의됐지만 통과는 글쎄

근로자아닌 탓 일하다 다쳐도 알아서

당장 급한 고용·산재보험이라도 돼야

 

근로기준법은 사업주에 고용돼 일하는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다. 그런데 법 제11조는 5인 미만 사업·사업장,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사업장, 그리고 가사(家事) 사용인은 법 적용 대상에서 빼고 있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 뒤로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내용이다.

 

가사 사용인이 문제다. 가사 사용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하는지 개념 자체가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분명 존재하고, 또 대중매체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엄연한 직업이다. 옛날에는 파출부가정부로 불렀고, 더 이전에는 식모라고도 불렀다. 요즘은 가사도우미, 더 나아가서는 가사노동자로 부른다. 쉽게 말하면 임금을 받고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이다.

 

가사노동자들은 4대 보험은 물론 노동자로서 모든 법적 보호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또 정부의 일자리 관련 통계에서도 빠진다. 일하다 다쳐도 가사노동자 본인이 알아서 치료를 받고 병원비를 내야 한다.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은 당연히 급여를 못 받고, 일자리를 잃는 순간 소득이 0원이 된다. 물론 공식적으로 직업이 없어서 은행에서 대출도 못 받는다.

 

▲ 최영미 (사)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 성상영 기자

 

최영미 사단법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가사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얻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온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이끄는 한국가사노동자협회는 우렁각시라는 브랜드로 가정 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법인이다. 가사노동자와 이용자를 중개하는 일은 서울·경기·강원·경남·전남·전북에 있는 10개 지부에서 맡는다. 협회는 돌봄 서비스의 확충과 돌봄 노동자들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지위 향상 등이 주된 설립 목적이다.

 

81학번인 최 대표는 당시의 여느 대학생들처럼 학생운동을 하다 노동운동에 몸담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에는 실업자 운동을 하며 50·60대 여성 노동자들이 1순위로 구조조정 당하는 모습을 봤다.

 

최 대표는 이것을 계기로 가사노동 문제에 뛰어들었다. 학력이 낮고 주류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평가받는 중·장년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익숙하게, 잘할 수 있는 일은 가사노동이 아닐까 생각해서다. 최 대표는 집안일 자체가 경력이고 기술 아니냐고 해서 가장 간단한 교육을 통해서 (일거리를) 찾다 보니 가정 내 돌봄이란 걸 하게 됐다생활 영역을 직업 영역으로 넓힌 것이라고 말했다.

 

가사노동이 직업 세계로 들어온 이상 노동시간, 임금을 비롯해 근로계약에 관한 온갖 규칙이 만들어져야 한다. 최영미 대표가 가정 내 돌봄 관련 활동을 시작한 이후 꾸준히 집중해 온 것은 가사노동자를 법 테두리 안으로 들여놓는 일이었다. 가사 이용자와 노동자, 그리고 이들을 맺어주는 직업소개소 같은 중개자에게만 맡겨놓고 국가가 내버려 두는 상황을 바꿔야 했다. 201712월 가사노동을 공식화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가사근로자법)이 만들어졌지만, 국회는 오리무중이다.

 

▲ 최영미 (사)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 성상영 기자

 

지금의 근로기준법으로는 120% 안 되죠. 2010년에 돌봄노동자보호연대를 만들고 양대 노총과 여성단체연합까지 다 끌어들여서 한 게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낸 거였어요. 김상희 의원이 (법안을) 냈다가 폐기되고, 그다음 회기에 이미경 의원까지. 뒷심이 없어서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만족했죠. 2011년도에 ILO(국제노동기구)가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협약을 만들었어요. 협약을 비준한 우리나라가 2017년도에 발의된 가사근로자법을 빨리 통과시키는 게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정치권이 총선 체제로 들어간 가운데 국회가 열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재 정부, 이정미 정의당 의원,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3개의 법안이 있는데,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가사근로자법은 임기만료 폐기될 운명에 놓였다.

 

안타까운 점은 여기까지가 지난 10년 동안 가정 내 돌봄 운동의 성과라는 사실이다. 법안 발의까지 이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했다. 최 대표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을 현장에서 집중해서 싸웠다“(가사노동자들이) 앞치마 입고 국회 가서 1인 시위하고 별짓을 다했지만, 뭐라고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안 되니까 실패했다고 한다고 아쉬워했다.

 

한 번에 성과를 얻다 수백 번 실패하며 좌절하느니 작지만 당장 필요한 결실을 보는 게 나을 수 있다. 가사노동자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라고 최 대표는 강조했다. 다른 노동자들처럼 일하다 다치면 치료비 부담 없이 몸을 추스를 수 있어야 하고, 일자리를 잃으면 실업급여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 생각엔 더는 법을 발의하지는 못하겠고 고용·산재보험 적용 있죠? 이걸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회원들이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나온 게 없잖아요. 가장 급한 게 고용·산재보험이니까. 석 달 전에도 회원이 (물건을 받치고) 올라가 뭘 닦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는데 3개월간 일을 못 하면서 병원비도 자기가 냈죠, 실업급여도 못 받았죠. 지금 프리랜서도 산재가 돼요. 특수고용직 종사자도 법안이 통과돼서 올해 7월부터 산재가 확대 적용되고. (가사근로자법 통과가) 안 되면 내년부터 고용·산재보험이라도 적용해야 해요.”

 

가사근로자법 통과든 가정 내 돌봄에 대한 고용·산재보험 적용이든 법을 만드는 국회의 의지가 중요해 보인다. 최 대표는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와 1인 가구, 노인 가구의 급증으로 가정 내 돌봄에 대한 수요는 지금도 넘쳐나고 있고, 앞으로는 시장이 훨씬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만큼 핵심적인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그러나 20대 총선을 석 달여 남은 지금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나.

 

문화저널21 성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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