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페르소나’를 즐기는 삶

박항준 | 기사입력 2020/01/14 [13:35]

[박항준 칼럼] ‘페르소나’를 즐기는 삶

박항준 | 입력 : 2020/01/14 [13:35]

심리 철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고전극의 가면)를 어떠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가에 관한, 개인과 사회적 집합체 사이에서 맺어지는 일종의 타협으로 정의한다. 페르소나(Persona)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 자신의 성격과는 다른 가면을 쓴 모습으로 직장생활을 하거나 가정생활에서 전혀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고뇌를 주제로 한 연극이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근대에서 페르소나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개인에 대한 억압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반면 현대 시대에서 페르소나는 오히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성의 누림을 의미한다. 다양한 정보 습득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다양성’을 현대인들은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취하게 된다. 

 

미국의 어느 정치인은 ‘집에서는 보수당이고, 사회에 나아가서는 진보당이며, 국가차원에서는 민족주의자’로서 행동한다고 한다. 

 

만일 이 정치인이 페르소나에 갇혔다면 집에서는 보수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보여줄 수 없으며, 국제사회에서 민족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 자신의 페르소나에 갇혀 자기의 의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최근 온 국민이 두 개의 ‘이데올로기 페르소나’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의 가면을 쓰고 진보는 무조건 적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 상대편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 시대는 지났다. 나와 주장이나 이념이 같은 우리측 사람이 잘못한 것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진정한 페르소나의 삶이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한 관점이나 이념을 그대로 가져야 하는 강박에 갇혀 있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가 페르소나에 갇혀 우리가 자신을 숨기고 괴로워하는 시대는 지났다. 

 

상대가 합리적이고 본질적 담론으로 접근한다면 아무리 반대 측의 주장이라도 상대의 생각에 동의하고 이를 함께 해주는 것이 바른 페르소나의 삶이다. 

 

이제 한 가지 페르소나에 갇혀 억지로 살지 말고,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행복한 삶을 누리면서 살아보자.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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