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보리 개떡 / 박정만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1/13 [08:43]

[이 아침의 시] 보리 개떡 / 박정만

서대선 | 입력 : 2020/01/13 [08:43]

보리 개떡

 

앞산의 푸른빛도 언필칭 기울어 갈 때

늦은 저녁잠을 슬쩍 달래어

가마솥에 댓바리로 쪄 주던 보리 개떡

멍석 옆의 모깃불도 꺼져 버리고

하늘엔 그녘 땅의 별빛만 총총하게

미리내 건너가는 다리를 놓았었지만

 

어머니와 나는 맞받이로 앉아서

맞은바래기로 하늘을 보며

보리 개떡에다 별무늬 잇자국도 남기며

수알새치* 같은 어둠도 보며

두벌잠 자고 난 누에같이 이야기했네.

 

紙燈籠은 문밖에 내걸리어

芝蘭과 귀엣말도 주고받았고

돌쩌귀엔 가타부타 귀뚜리 울음도 살아

지르르 여름밤을 속여 놓았네.

대싸리엔 어둠을 몸에 달고

담록색 꽃이 닥지닥지 피어서

한 무더기 기름떡처럼 뭉쳐 있었고,

겹사돈하듯이 맺어진 이웃집 담장 너머

배나무 몇 그루와 살구나무들.

 

보리 개떡으로 불러 보는 입찬 말소리.

 

                          *수리부엉이

 

# 박정만 시인은 5공 시절 무자비한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와 친분이 있던 모 소설가가 1981년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장편 소설 <욕망의 거리>속에서 고위층을 비아냥거리는 몇몇 표현이 있었다는 이유로 모처로 끌려가 심문을 받게 되었고, 그 작가의 소설을 출판한 출판사의 편집장이던 박정만도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었다. 무지막지 고문의 후유증은 탁월한 서정 시인이었던 그를 정신의 황폐 속으로 몰아갔고, 식음을 전폐하고, 폭음으로 쓰러져가는 자신을 지켜내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면의 울림을 시로 적어 불러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 핍진해 스스로 갈 길을 찾을 수 없을 때, 좌절과 절망의 나락에 서서 힘겨워 질 때,  삶의 베이스 캠프였던 어머니 품에 안기어 위로 받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엄혹하던 시절, 폭력과 탄압으로 폐쇄적이고 경직되었던 폐쇄 공간에서 겪은 잔혹한 고문의 트라우마는 ‘모성’을 찾아내려 하였으며, 모성에 귀의하고자 하였음을 한 편의 시가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에게서 탯줄이 잘린 그 순간부터 인간은 모두 크던 작던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을 겪으며 살아 갈 수밖에 없기에 사람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자신을 구현하며 살아가려 한다. 시인은 “보리 개떡”을 “가마솥에 댓바리로 쪄 주던” 어머니와 마주 앉아 “보리 개떡에다 별무늬 잇자국도 남기며” “수알새치* 같은 어둠도 보며/두벌잠 자고 난 누에같이 이야기했”던 ‘어머니’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 위로를 받으려 한다. 

 

“보리 개떡”은 춘궁기를 넘기려던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건너온 어른들의 세대엔 추억의 음식이다. 간식도 거의 없던 시절 등잔불이나 호롱불 아래서 늦은 밤 까지 책을 읽는 자손을 위해 보리 가루를 치대어 쪄낸 “보리 개떡”을 먹으며, 어머니와 “맞받이로 앉아서” “보리 개떡으로 불러 보는 입찬 말소리”로 미래의 꿈을 꾸어 보기도 했을 것이다. 

 

박정만의 시 “보리 개떡”은 그가 무자비한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 쯤 시였다. 순정한 시, 진정성의 시는 힘이 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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