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복싱계 대모 심영자 전 88프로모션 회장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1/08 [10:32]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복싱계 대모 심영자 전 88프로모션 회장

조영섭 기자 | 입력 : 2020/01/08 [10:32]

복싱계에 지도자로 입문한지 30년을 훌쩍 넘겼다. 89년 2월 군 제대하고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면서 보내던 어느 날, 기자를 88프로모션에 트레이너로 영입해 준 심영자 회장이 오늘 복싱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당시 기자의 집과 맞붙어있던 초등학교 동창인 88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광선이 자택에 칩거하면서 아침이면 양복을 입고 각종 행사장으로 불려갈 때 작업복을 입은 기자는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 애써 외면하고 돌아서야만 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나는 그해 4월 서울에 입성해 아마와 프로세계를 오가면서 수많은 복싱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많은 것을 터득했고 이를 토대로 유익한 복싱칼럼 을 쓸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발판을 마련해준 심회장을 지난 연말 광진구 중곡2동에 있는 자택에 두 차례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특히 두 번째 방문은 심회장이 창단한 용산공고 출신의 홍성민 SM 체육관 관장이 동행해 의미가 컸다. 심회장과 기자의 인연은 83년 8월 개최된 제3회 로마 월드컵 대표 선발전 이었다. 

 

▲ (왼쪽부터) 심영자회장과 홍성민관장  (사진= 조영섭 기자)


당시 김성준, 김철호, 장정구 등을 후원하던 극동 프로모션 회장을 역임한 심 회장은 김철호가 82년 11월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6차방어전에서 라파엘 오로에게 6회 KO패하며 타이틀을 상실하고 야인으로 전락하자 그와 함께 프로모션 창업을 염두에 둔 채 경기장을 찾았던 것이다. 당시 플라이급에 출전한 기자는 준결승 에서 최천섭(경남대)을. 결승에서 박제석(웅비)을 꺽고 올라온 권채오(한국화약)를 꺽고 라이트 플라이급의 황동용(한국유리), 밴텀급의 이윤희(한국체대), 라이트급의 고희룡(웅비), 라이트 웰터급의 김기택(수원대), 라이트 미들급의 안달호(일우공영) 등과 우승을 차지하며 최종선발전 티켓을 확보했다.

 

하지만 허영모(한국체대)와 최종선발전도 치루지 못한체 동료복서들인 황동룡, 김강원, 김의진 등과 함께 그해 10월 20일 아마추어생활을 청산하고 심영자회장이 제공한 합숙소인 워커힐 APT 22동 1002호로 입촌했다. 그날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와 MBC청룡의 최종전인 5차전이 벌어진 날이었다. 

 

▲ (왼쪽부터) 심영자회장과 김두조 회장     (사진=조영섭 기자)

 

지금와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프로행은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연성과 민첩성이 부족한 나는 프로세계에 적합하지 않은 함량 미달의 복서였다는 것이다. 일찍 복싱을 접고 88체육관 심영자 사단에서 사범생활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른 현실을 전화위복이라 여기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심 회장은 43년 전북 군산태생으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여고시절 무용을 전공한 발레리나가꿈이었던 평범한 소녀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시나리오 작가인 오빠와 친분이 두터운 영화감독의 눈에 띄어 생각지도 않게 고수미 란 예명으로 스크린에 데뷔하게 된다. 당시 꽤 관심을 끌었던 영화 ‘죽도록 사랑했노라’에서 신성일의 상대역을 맡았던 것을 비롯해 홍도야 울지마라, 쌍칼 등 17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주목을 받았던 여배우 심영자는 66년 결혼과 함께 스크린을 떠난다. 

 

▲ 죽도록 사랑했노라 란 영화에 출연할 당시의 심영자 회장 (좌측)  (사진=조영섭 기자)


이 때  남대문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자유당시절 한주먹으로 명성을 날린 둘째 오빠의 휘하에서 활약한 행동대장이 바로 김철호, 유명우, 지인진 등 세계챔피언을 베출한 김진길 관장 이었다.  WBC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르는 김성준도 남대문을 주 무대로 활발하게 영업(?)하던 그때 그 시절 이었기에 활동공간이 같은 심영자 회장 오빠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어 훗날 심회장과 인연의 끈이 연결 됐다. 김성준이 암흑의 그림자를 벗어나 복싱에 입문할 때 지속적으로 후원하던 심 회장은 78년 김진길 관장이 베출한 신인왕 출신 양일과 김철호의 후원자 역할을 했다.  

 

심 회장은 79년 부산에 전지훈련 중인 챔피언 김성준의 스파링 파트너 중에 신출귀몰한 기량을 보유한 천재 복서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그를 서울로 입성시켜 프로로 대뷔시키는 발판을 마련한다. 그가 바로 장정구다. 그 후 장장구, 이일복, 김철호를 자택에 합숙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선수양성에 심혈을 기울인 그녀는 80년 1월 세계정상에 등극한 김철호가 82년 11월 야인으로 전락하자 83년 10월 박용운, 박광구, 최연갑, 김의진, 황동용, 박조운 등을 주축으로 첫 항해를 시작했다. 이중 황동용의 스킬은 군계일학 같은 존재였다. 당시 88프로모션에서 유명우의 스카웃 요청을 외면할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센스, 테크닉을 겸비한 수준급 복서 였지만 헤르만 토레스에게 판정승을 거둔 후 안타깝게 망막부상으로 복싱을 접은 비운의 복서였다. 

 

이후 87년 6월 IBF 미니플라이급에서 이경연이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서곡을 연 후, WBA· WBC 양대 기구 플라이급을 석권한 김용강과 WBA 밴텀급과 WBC 슈퍼플라이급을 석권한 문성길, WBA 미니멈급 김봉준을 비롯해 정비원, 장태일, 백종권, 최요삼 등을 연달아 탄생시켰다. 

 

당시 88프로모션은 전속방송사인 KBS만으로는 차고 넘치는 선수들을 조달하기가 힘들어 아란프로모션(MBC), 모리스 프로모션(SBS)까지 문어발식으로 확장 연결함은 물론 케이블방송까지 접수해 방송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었다. 당시 직원들 봉급을 포함해 체육관 운영비용만 물경 2천만 원을 상회했던 대 군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 행사장에서 문성길 챔프(왼쪽)와 심영자회장 (사진= 조영섭 기자)


하지만 국내 전자업체 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던 모기업이 정치권과 엇박자를 내면서 부도가 났고 그 후 지원이 중단되면서 휘청거린다. 궁여지책으로 92년 미국의 담배회사인 카멜로부터 1년에 1억6천만 원을 지원받으며 도약을 시도했지만 생명줄이던 방송국 중계료가 탄력을 잃으면서 숨통이 막혀오는 상황으로 몰렸고, 93년 11월, 문성길이 10차 방어전에서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자 그동안 과도한 투자로 쌓였던 누적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로 이어졌다.  

 

당시 그 경기를 지극정성으로 주최했던 한때 포항의 밤의 황태자로 불렸던 김두조 회장이 떠오른다. 짧은 만남 속에  강하고 선이 굵은 이미지로 각인된 그는 젊은 시절 킥복싱을 수련했던 무술인으로 포항 권투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베출한 자신의 선수인 백종권을 아무 조건없이 심 회장에게 양도한 상남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5년 9월 폐암으로 향년 64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아무튼 이 여파로 심 회장은 벽초 홍명희가 임꺽정을 저술했던 안성의 칠장사 인근에 5만평의 임야와 명동의 4백평의 대지, 40억을 호가하던 자택 워커힐 APT가 담배연기처럼 사라지는 비운을 맛보았다. 심 회장은 2005년을 전후해 중국으로 진출해 프로모션을 설립, ‘꿈이여 다시한번’을 외치며 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당시 두 차례나 동행한 기자도 중국 조선족 중 최고위직을 지낸 조남기 장군의 친동생을 만나 후원업체를 선정하는 등 조그만 불씨를 바라보며 희망의 끈을 연결하려 했지만 행운의 여신은 안타깝게 외면해 버린다. 인생은 곱셈이다 어떤 기회가 찾아 와도 내가 제로(0)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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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카스 2020/01/11 [17:13] 수정 | 삭제
  • 제가 심영자여사를 처음본 때는 83년 군산체육관에서였죠 그당시 김철호관장과 심여사님께서 선수 스카웃하러 군산체육관에 왔었죠 도무지 나이를 가늠할수없는 미모와 짙은 화장 화려한 옷차림이 심여사님께서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후에 김철호관장님은 김의진 황동룡선수를 데려가려했다들었습니다 관장님은 조영섭선수만 데려가라 했었죠 결국 의진이 강원이 영섭이 황동룡까지 4명이 떠났지만 그래도 80년대 군산체육관은 선수들이 넘쳐나는 최고 전성기였습니다 그당시 관장님은 속이 많이 탔었는데 철없던 군산체육관 관원들은 김철호 세계챔프왔다 좋아했었죠
  • kmc68972 2020/01/08 [20:45] 수정 | 삭제
  •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 하네요 항상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마직막글 인생은 곱셈이다 라는 말이 여운을 남기네요.. 경자년 한해에도 계속적인 좋은 기사 부탁드리며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복싱월드 2020/01/08 [14:08] 수정 | 삭제
  • 그렇군요 심영자회장님과 진인사님과의 인연도 길군요 저도 제수하지않고 바로 프로에 갔었다면 진인사님과 사제지간이 됐을수도 있었겠네요^^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베냐민 2020/01/08 [11:30] 수정 | 삭제
  • 한국 복싱의 역사. 조영섭 관장님의 글들이 한국 복싱의 불꽃이 되어 다시 복싱의 전성기가 찾아오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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