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눈의 백일몽 / 김도언

서대선 | 기사입력 2019/12/02 [08:28]

[이 아침의 시] 눈의 백일몽 / 김도언

서대선 | 입력 : 2019/12/02 [08:28]

눈의 백일몽

 

   덥고 가난한 실론 섬에서 일하러 우리나라에 온, 눈자

위만 흰 젊은 사내가 늑대처럼 사나운 한국인 관리자에게

매를 맞고 공장 문을 막 나서는데 그의 검은 콧등에 눈 한

점이 툭, 하고 떨어진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 목격하는 최

초의 눈,  차갑고 뭉클한 한 점이다.  시끄럽고 무서운 땅

에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참으

로 서럽고 이상한데, 그사이 눈은 그의 어깨에도 툭, 무릎

에도 툭, 눈동자에도 툭, 떨어진다.  그의 온몸이 눈과 처

음 만나 환해질 때,  그는 자신에게 매질을 한 이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늑대를 용서하기로 한다. 늑대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그이의 외로운 영혼을 감싸 주기로 한다. 덥

고 가난한  실론 섬에서 일하러 우리나라에 온 젊은 사내

가 눈 오는 길을 걷는다. 하얀 눈 속을 매 맞은, 검은 자

가 지나간다. 

   

# 어떻게.... “늑대처럼 사나운”자가 사는 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일까. 매를 맞아 전신이 아프고 서럽기만 한 외국인 노동자의 “검은 콧등에 눈 한/점이 툭, 하고 떨어진다.” 이리도 아름다운 눈이 내리는 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관리자는 왜 “늑대”의 마음을 가졌을까?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Dangerous)해서 한국 사람들은 기피하는 일들을 도맡고, “덥고 가난한 실론 섬”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일용할 양식을 마련해 주려고 먼 길을 왔을 뿐인데, 왜 때릴까?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는 감시 아래서도 먼 곳에 두고 온 가족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했는데, 정말 “시끄럽고 무서운 땅”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늑대”를 만나다니.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에게 몽니를 부리는 자들은 과대망상증과 피해망상증을 동전의 양면처럼 지닌 자들이다. 스스로에게 집착하는 자기애적 욕망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자기존재감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타인들의 인정이 ‘상징적 수치로 환산된’ 사회적 직책과 권위가 합성된 자들의 경우, 사소한 것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껴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맷값 폭행’, ‘땅콩 회항’, ‘물벼락’ 등처럼 소위 갑질 하는 자들의 내면에는 “늑대”가 날뛰고 있다. 

 

갑질 하는 자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empathy)이 매우 낮은 데, 이는 반사회적 성격특성의 일부이다. 공감능력을 관장 하는 부위는 거울뉴런계(mirror neuron system)로 뇌의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는 거울뉴런계를 통해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행동을 온몸으로 이해 할 수 있으며, 그 행위를 나의 행동으로 전환 시키는 모방행동이 가능하다. 공감은 도덕성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하얀 눈 속을 매 맞은, 검은 자/가 지나간다.” “그의 온몸이 눈과 처/음 만나 환해질 때, 그는 자신에게 매질을 한 이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늑대를 용서하기로 한다. 늑대와 함께 살/수밖에 없는 그이의 외로운 영혼을 감싸 주기로 한다.” 라는 문장 앞에서 몹시 부끄러워진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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