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설득에 대한 정명(正名)

박항준 | 기사입력 2019/11/26 [15:11]

[박항준 칼럼] 설득에 대한 정명(正名)

박항준 | 입력 : 2019/11/26 [15:11]

국어사전에서 ‘설득’이라는 말은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으로 정의되어 있다. 쉽게 풀면 내 텍스트를 상대가 동의하게 만드는 것을 설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대로여서인지 대다수 설득의 심리학이나 처세서들은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논리를 만드는 협상의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설득’이라는 용어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상대는 절대 내 텍스트의 팩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텍스트에 대한 팩트를 상대가 동의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대도 나름 텍스트가 있고 팩트를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설득’이란 무엇인가? 바로 본질에 대한 상호 동의 과정이 진정한 ‘설득’이라 할 수 있다.

 

상대가 내 말에 트릭이나 폭력, 권위, 돈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대가 내 텍스트에 설득당했다는 것은 내 텍스트의 ‘팩트’가 아닌 ‘본질’에 동의했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테크닉이나 화려한 협상의 기술을 사용하거나 상대의 텍스트와 내 텍스트를 상호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두 텍스트 간의 본질을 서로간의 담론을 통하여 도출해야 한다.  

  

‘담론(Contexting)’은 본질을 찾는 과정이지 상대와 싸워 이기는 과정이 아니다. 따라서 서로 간의 팩트 체크는 담론에서 피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상대의 텍스트가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를 따지는 순간 본질을 찾는 노력은 무력화된다.  

 

최근 지소미아 종료 유보조치를 두고 한일 외교당국 간 설왕설래가 있었다. 사과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누가 먼저 제안을 했느냐? 라는 팩트 체크는 감정싸움으로 밖에 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양국이 진지한 담론을 통하여 본질적인 문제를 찾는데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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