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11월 저녁 / 정수자

서대선 | 기사입력 2019/11/18 [08:09]

[이 아침의 시] 11월 저녁 / 정수자

서대선 | 입력 : 2019/11/18 [08:09]

다 해진 길을 끌고 가을이 가고 있다

목마다 목이 시린 시래기 같은 시간들

그 어귀 외등을 지나는

당신 등도 여위겠다

가으내 비색에 홀린 바람의 당혜 같은

귀 여린 잎사귀도 먼 곳 향한 귀를 접고

제 안의 잎맥을 따라

한 번 더 저물겠다

 

# 11월은 갈무리하는 달이다. 시골집 담벼락에 걸려 있는 “시래기”를 보면, 갈무리한 반찬들과 잘 익은 김장김치와 뜨끈하고 구수한 시래기 국이 놓인 밥상 앞에 모여 오손도손 식사를 하는 모습들이 아른거린다. 농사지은 곡식이나 채소들을 양식이나 씨앗으로 쓰기위해선 갈무리가 필요하다. 추수한 나락은 나락뒤주에 두었다. 전라도에선 ‘둑집’이라 부르고, 경상도에선 ‘볏두지’라고 부른 임시저장고에 나락을 저장했지만, 최근에는 콤바인으로 수확한 벼를 대형 포대나 탱크에 담는 즉시 미곡 종합처리장으로 운반하여 그곳에서 건조하고 저장한다.

 

감자나 고구마는 그늘에 펴서 살짝 말렸다가 ‘움’에 갈무리 한다. 움은 대개 1.5미터 정도의 깊이와 지름으로 둥글게 땅을 파서 바닥에는 왕겨나 짚을 깔고 그 안에 감자나 고구마를 넣고, 위에는 다시 짚이나 왕겨로 덮고 겨울에 얼지 않도록 충분하게 흙으로 덮거나 지붕을 한다. 이듬해 농사에 쓸 씨앗을 갈무리하는 일을 ‘씨갈무리’라 한다. 가을걷이를 하면서 다음해 씨앗으로 쓸 것은 잘 여문 것으로 골라 덜어 둔다. 조, 수수 기장 옥수수 같은 것들은 이삭을 베어서 한 줌씩 묶어 방이나 곳간에 걸어두었다가 이듬해 씨앗으로 쓴다.

 

11월을 건너며, 올해 세웠던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면 달성한 목표를 통해 내년에도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나 전략들을 ‘씨갈무리’ 해둘 필요가 있다. 갈무리해둔 식량으로 추운 겨울을 건너고 씨갈무리 해둔 씨종자들로 새해 농사를 시작할 수 있듯이, 올해를 살아낸 결과물들을 갈무리해두고 새해를 맞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귀 여린 잎사귀도 먼 곳 향한 귀를 접”듯, 소문과 선동으로 밖으로 향했던 귀를 접고 “제 안의 잎맥을 따라”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이 마련할 수 있는 갈무리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헤아려 보는 11월이면 어떨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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