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은근과 끈기를 보여준 박봉관과 예산복싱 전사들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19/11/05 [09:22]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은근과 끈기를 보여준 박봉관과 예산복싱 전사들

조영섭 기자 | 입력 : 2019/11/05 [09:22]

찬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불어대는 11월, 한국복싱의 분위기는 아마·프로 공히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상실한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을사년(1905년) 11월17일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고 슬픈 분위기를 빗대 을사년스럽다는 말이 나왔고 이 말이 변형되어 ‘을씨년’이 되었다한다. 또한 1982년 11월 18일은 김득구 선수가 이역만리 미국 라스베가스 에서 WBA 라이트급 챔피언 레이 멘시니에 도전했지만 링에서 사망한 충격적인 날이라 복싱계도 을씨년스럽다는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달이리라.

 

특히 11월은 유난히 가요계가 가장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유독 11월에 팬들의 사랑을 받던 젊은 가수들이 우리 곁을 하나둘씩 차례로 떠나갔기 때문이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이 27세에 떠나간 것을 비롯해 그의 라이벌이자 마지막 잎새를 부른 배호도 29세에, 하얀나비 를 부른 김정호와 내사랑 내곁에를 부른 김현식은 33세에 삶과 작별의 인사를 나눴고 사랑하기 때문에를 부른 유재하도 25살에 우리 곁을 떠나갔다. 

 

(사닌 왼쪽부터) 박봉관 감독, 김종진 심판, 정해만 감독, 박현교 심판, 이현영 예산중 행정실장 (사진=조영섭 기자)

 

이들은 왜 가을에 떠났을까 최백호의 ‘내마음 갈 곳을 잃어’의 가사인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 지면 서러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란 구절이 겹쳐 떠오른다. 이런 을씨년스런 11월의 분위기속에 지난 2일 충남 예산에서 열린 제4회 충남 생활체육회겸 제28회 충남학생 체육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목적지인 예산중으로 향했다.

 

충남 예산은 삼국시대 흑치상치 장군이 소정방의 당나라군을 상대로 백제 재건을 위해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마지막 거점지인 임존성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흑치상치 장군의 혼(魂)이 서려서일까. 예산출신 분들은 각 분야 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용사들이 유난히 많이 탄생한 고장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932년 4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매헌 윤봉길 의사도 이 고장 출신이고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2차전 미국과의 대전에서 미국 수비수와의 충돌로 이마가 찢어지며 과다출혈을 했지만  붕대로 이마를 동여매고 투혼을 발휘하면서 교체될 때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4강신화의 주역 황새 황선홍도 예산출신 이다.

 

(사진 왼쪽부터) 전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과 전 동양 웰터급 챔피언 박봉관 (사진=조영섭 기자)

 

또한 복서로써  최악의 상황에서 최후까지 항전해 경북체고 곽귀근 복싱 감독이 학생들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지표로 삼게 한 신동길도 예산 출신의 복서다. 신동길, 그는 1987년 예산 대흥고에 입학, 졸업할 때까지 덕산면에 위치한 체육관까지 두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왕복 4시간의 비포장 도로를 왕래하면서 졸업할 때까지 무려 9차례 전국대회에 출전했지만 단한차례도 입상하지 못하고 대학진학이 좌초된 불운의 복서였다.  

 

결국 유급을 선택해 다시 한 번 정상도전을 시도한 그는 당시 기자가 속한 용산공고의 백달근에게도 패하는 등 2차레 전국대회에서도 탈락하며 빛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속을 묵묵히 걸었던 언더 그라운드 복서였다. 4년 연속 전국체전 충남 선발전마저 대천고의 아성에 밀려 본선진출에 탈락한 그에게 고등학교 4학년(?) 마지막대회인 우승권대회만이 달맞이꽃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한 그는 12번째 도전에서 4전 전 KO승으로 플라이급 우승과 함께 최우수복서로 선정되어 막차로 경희대에 진학,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격언을 실증(實證)해 보이는 복서로 탄생했다. 비로소 비포장도로를 벗어난 그는 포르쉐를 타고 아우토반을 질주하듯 쾌속행진을 펼친다.

 

신동길은 아시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전인덕(원주시청)을 꺽은 것을 비롯해서 이근식, 배기웅, 채승록, 이광호, 남기춘 등 국가대표 정상급 복서들을 차럐로 제압하며 대학 3.4학년 때는 각각 4관왕에 오르며 32연승을 거두며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대표(플라이급)로 발탁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사진 왼쪽부터) 박봉관 예산체육관장, 신동길 국가대표, KBF 이인경 회장 (사진=조영섭 기자)

 

82년 1월 WBC 수퍼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한국의 최충일을 11회 KO로 꺽어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아내는 필리핀의 전 세계챔피언 롤란도 나바레테 라는 전직 챔피언을 상대로 배수진을 치고 적지에 뛰어들어 두 선수 모두 눈덩이가 만신창이가 되는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끝에  2차례 모두 극적인  KO승을 거둔 결사항전의 대명사 WBA 주니어 라이트급 세계랭커 문태진도 예산출신이다. 나바레테를 두 번째 KO로 꺽을 때 그의 나이 37살의 고령이었다. 

 

현 KBF 회장으로 세계챔피언 탄생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며 고군분투하는 이인경 회장 역시 예산 출신이다. 예산출신 박봉관도 이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복서다. 92년 프로에 입문, 현대 프로모션에서 박영균, 최희용과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11전 전승 7KO승을 기록한 박봉관은 94년 1월 동양 웰터급 챔피언인 박정오의 12차방어 타이틀에 도전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박정오도  예산 예덕실고 에서 김충배 선생 휘하에서 복싱을 수련한 복서였다는 사실이다. WBA 웰터급 챔피언이자 28전 전승 24KO승을 기록한 아이크. 퀴테이(가나)와 세계타이틀 도전을 목전에 둔 그는 31전 27승 20KO 2무 2패를 기록한  동양권에서 언터처블(Untouchable)이었다.

 

박봉관은 이 대결에서 활화산처럼 연타를 뿜어내며 강공으로 프레싱을 걸자 박정오는 수세에 몰린다. 세계타이틀을 앞둔 박정오에게 패배를 안길 수 없었던지 경기는 무승부를 기록한다. 박봉관은 박정오가 반납한 동양타이틀을 윤석현과 타이틀 결정전을 치러 판정승을 거뒀는데, 후에 동양챔피언에 등극하는 윤석현도 예산출신의 복서였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바로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 63주년 되는 95년 4월 29일 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정해만 보령시청 감독, 조세형 선수, 박봉관 감독 (사진=조영섭 기자)

 

이후 1차 방어에 실패하고 은퇴한 .그는 99년 지도자로 변신, 소년체전에서 금메달 10개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5개를 획득하며 명장 지도자 반열에 우뚝선다. 소년체전 금메달 10개는 전국 지도자중 최다 획득 1위다. 박봉관은 소년체전에서 획득한 10개의 금메달은 김응룡 감독이 해태와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의 금자탑을 수확한 것만큼이나 소중하게 가슴속에 훈장처럼 간직하고 있다.

 

참고로 고교무대에서는 경북체고 곽귀근 감독이 전국체전 에서 19개의 금메달을, 실업무대에서는 보령시청 정해만 감독이 27개를 획득해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박봉관은 지금부터 4년전인 96회 전국체전(강원도 원주) 코크급 8강전에서 당시 고교 랭킹 1위였던 조세형이 서울팀에 원통하게 패해 무려 3시간반 동안 경기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경기를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당시 스탠드에서 경기를 참관하던 서원대학 학부모가 “장난을 쳐도 유분수지” 라는 짧은 한마디가 경기내용을 함축시켜 설명해준다. 그 경기에서 심판을 본 K 라는 인물은 직접 예산까지 승용차를 몰고와 박봉관 앞에 정중하게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을 정도로 파장이 큰 경기였다. 당시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모 감독은 당시 49Kg에서 예산고 세형(조세형)이를 잡을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원사이드한 경기가 뒤집어지자 감히 어느 누구도 내려오라고 말하는사람이 없을 정도 였다고 당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사진 왼쪽부터) 한덕수 예산복싱협회 회장 과 박봉관 감독 (사진=조영섭 기자)

 

그 후 조세형을 대전대에 진학 시키고 1년을 와신상담(臥薪嘗膽)한 박봉관은 97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서울팀 바로 그 선수를 예산고 조세형의 후배인 조성민(한국체대)이 보란 듯이 선배의 패배를 설욕하면서 대망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지난 쓰라림을 훌훌 털었다. 박봉관은 그런 지도자였다. 

 

조세형은 대전대에 진학, 상처입은 조개가 진주를 잉태하듯이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입지를 다졌고. 전국체전 3연패를 달성하며 49Kg급에서 부동의 1위임을 다시 한 번 재확인 시키며 내년 동경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한 워밍업을 마쳤다. 32년 전 88올림픽, 같은 체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김광선의 영광을 그가  재현하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서 ‘먼 북소리’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나이를 먹는 것 자체는 그다지 겁나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 두려웠던 것은 어떠한 시기에 달성해야만 할것이 달성되지 못한 채 그 시기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베냐민 19/11/05 [10:55] 수정 삭제  
  멋진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박영학 19/11/05 [12:16] 수정 삭제  
  잘 읽고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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