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콘텍스팅(contexting, 텍스트 간 융합) 알고리즘

박항준 | 기사입력 2019/10/29 [11:59]

[박항준 칼럼] 콘텍스팅(contexting, 텍스트 간 융합) 알고리즘

박항준 | 입력 : 2019/10/29 [11:59]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각자의 주관(텍스트)이 뚜렷하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정보공유가 쉽고 학력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완전한 정보(경험, 지식)에 의해 탄생한 각자의 텍스트들을 타인의 텍스트와 융합하는 텍스트 간 갈등 해결의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가진 각자의 텍스트 간 융합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의 9월 17일자 칼럼에서 설명한 ‘기관사의 본질’에서와 같이 본질체크가 답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콘텍스팅 대가(大家)의 지혜를 빌어 함께 고민해 보자.       

 

콘텍스팅의 대가(大家) 중 한 분은 바로 예수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 예화는 본질체크의 정수다. 만일 예수가 ‘간통’과 ‘율법’, 그리고 돌로 치는 ‘정죄’라는 요소로 이 사건을 팩트체크 했다면 어땠을까? 반대했다면 분노한 이들에게 예수도 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팩트체크를 하지 않는다. 본질체크를 통해 다툼과 갈등의 본질적인 부분을 터치한다. 간통한 여인을 돌로 내려치려는 사회에 죄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다. 죄와 정죄에 대하여 율법의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세상 사람들과 공유한 것이다.

 

본질 찾기와 더불어 예수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뛰어난 능력은 바로 ‘비유의 능력’이다. 본질체크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가 ‘비유’다. 사람들은 팩트에 대해 체크를 함으로 상대를 고치려 하고 가르치려 한다. 팩트 하나하나를 짚음으로써 상대의 텍스트가 틀린 것을 지적한다. 이러한 팩트체크는 상대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느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숨게하거나 자존심을 밟아 반발하고 심지어 뻔뻔하게 만든다. 인간의 갈등은 상대의 텍스트를 무시하거나 상대의 허물을 체크하는(끄집어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예수의 대화법은 주로 비유로 이루어진다. 잘잘못이나 죄를 꼭 집어 비판하지 않는다. 만일 간통한 여인을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치려한 이들에게 “너희같이 죄 많은 이들이 무슨 자격으로 이 여자를 감히 돌로 치려하느냐? 이 죄인들아!”라고 직접적인 팩트체크를 했다면 예수도 그 자리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비유’의 지혜는 조선시대 과거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현들은 과거를 ‘시’의 형식으로 치르고, 성현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탐독하도록 했다. 그 이유는 바로 본질을 찾고 이를 상대에게 비유로 이해시키는 ‘설득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설득의 능력이야말로 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시험의 답안을 ‘시’로 작성토록 했던 것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비유(시)로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재의 중요성을 시로 쓴 김춘수 시인의 ‘꽃‘을 살펴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며 비유로 ‘존재’에 대해 말한다. 존재에 대한 ‘본질’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이러한 멋진 비유가 나오게 된다. 

 

조선은 본질을 깨닫게 되면 정명(正名, 텍스트들을 바로잡아 하이퍼텍스트를 만듦)하게 되고, 이들이 사회 리더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비유’는 또한 상대에게 깨달음의 기회를 준다. 상대를 고치려 하고 가르치려 하면 훈계가 되고, 상대의(팩트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반발과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역효과가 나타난다. 부부싸움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가 이렇게 팩트체크를 통해 배우자를 고치려 하고, 가르치려 하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외출 준비에 시간을 끌어 약속에 늦는 아내에게 우리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지난주에도 30분 늦었고, 지지난 주에는 2시간 늦었고, 한 번도 제시간에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라고 배우자에게 팩트체크를 해보자. 돌아오는 답은 “내가 언제 매번 그렇게 늦었냐?”, “옷이 없어 고민하다 늦게 된 것이다.”, “약속을 미리 말해주지 않아서 그랬다.”, “아이들을 같이 챙겼으면 이랬겠느냐?” 등등 변명과 반발의 답이 돌아온다. 감정이 상하고, 부부싸움은 크게 번지게 된다.      

 

반면 예수가 행한 ‘본질의 지혜’로 이를 풀어보면 어떨까? ‘늦음’의 ‘팩트’가 아닌 ‘약속’의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팩트’는 약속을 습관적으로 늦는 것이지만, ‘본질’은 약속이라는 인간관계에서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약속의 본질에 대해 부부가 고민하고, 대화하고, 동의하는 단계가 바로 ‘콘텍스팅 알고리즘’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계약 이론’으로 표현한다. 

 

각자 텍스트를 갖고 있는 이들이 상호 텍스트의 본질에 동의하고 계약하자는 주장으로, 필자는 ‘노벨경제학상’을 탄 이 ‘계약 이론’이 실제로는 ‘노벨평화상'감이라고 생각한다. 

 

‘혹 이혼을 하게 되면 결혼 전 재산은 각자 돌려받고, 결혼 후 증식된 재산은 5대 5로 나눈다. 다만, 결혼의 파탄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있다면 3대 7로 나눈다. 아이들의 친권은 파탄의 귀책사유가 없는 이가 갖는다.’ 

이 혼전계약 하나만으로도 가정법원의 업무는 줄게 될 것이며, 이혼을 준비하는 부부 간 감정싸움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계약 이론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관리들의 마음가짐과 탐관오리에 대한 경고에 대하여 비유(은유)를 통한 본질적 접근의 효과를 낸 이몽룡의 시로 마무리해본다.       

 

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백성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대에서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이 눈물 흘리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망 소리 높더라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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