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양천구 협회장배 복싱대회와 SM체육관 대표 홍성민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19/10/22 [21:10]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양천구 협회장배 복싱대회와 SM체육관 대표 홍성민

조영섭 기자 | 입력 : 2019/10/22 [21:10]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란 노래가 전파를 타고 흘러나온다. 노래에는 흥과 한이 있어야 하듯이 문장에는 감동의 물결이 넘쳐나야 한다. 항상 소금에 간을 맞춘 듯 문장도 간이 맞아야한다. 스산한 가을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이 시간 문득 달력을 보니 10월 26일이란 글자가 시야에 확 들어온다. 

 

제5회 양천구 협회장배 복싱대회에서 축사 하는 홍성민 양천구 복싱협회 회장 (사진=조영섭 기자)

 

1년 365일 수많은 날들 중 유독 그날이 나의 뇌리에 콕 박혀있는 건 수많은 역사적 사연들이 가슴에 묻혀있기 때문일까. 1597년 그날은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불과 12척의 함선으로 왜선 133척을 격침시킨 명량해전이 발발한 날 이자, 1920년 김좌진 장군의 그유명한 청산리 대첩이 마침표를 찍은 날이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김재규와 안중근 의사의 저격으로 피살당한 날이기도 하다. 박정희와 이토는 서체도 비슷했고 생일도 (14일)도 같았다. 박정희는 74년 8월 육영수 여사가 피살될 때 문세광이 사용한 권총과 자신을 저격한 김재규가 사용한 권총이 공교롭게도 같은 회사 같은 기종(機種)의 총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제 스미스앤 웨슨사의 38구경 리벌버 권총이었다. 문세광 이란 인물의 모친의 성이 육(陸)씨(육말란)란 점을 생각해보면 그는 문중의 이모 뻘되는 육영수 여사에게 총구를 겨눴던 것이다. 

 

10월만 되면 심한 가슴앓이를 한다는 차지철의 노모 김대안 여사가 1998년 12월 101세로 세상을 떠나자 뒤를 이어 김재규의 모친 권유금 여사도 1999년 97세로 삶을 등졌는데, 권유금 여사가 사망한 그날이 바로 10월 26일 이었다. 2016년 그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 문서유출의 결정타를 맞고 대국민 사과를 한 후 정치적 심장박동이 멈춰진 날이기도 하다. 

 

▲ 91년 제44회 전국선수권 플라이급 우승자

용산공고 홍성민 (사진=조영섭 기자)

지난 19일, 서울 양천구 양천공원 특설링에서 제5회 양천구 협회장배 복싱대회가 개최되어 참관 차 그곳으로 향했다. 현장에는 73년 유고 사라예보에서 벌어진 세계탁구선수권에서 이에리사, 정현숙과 함께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박미라(당시 산업은행) 양천구 체육회 이사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세계선수권 금메달은 66년 미국 톨레토 세계선수권 레슬링대회 52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장창선 이다. 탁구 금메달은 정부수립 후 2번째 금메달이자 구기종목사상 최초의 금메달 이었다. 당시 탁구 감독인 천영석이란 이름 석 자가 교과서에 등재될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대회였다.

 

그리고  WBA·IBF 슈퍼미들급 챔피언 박종팔과,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을 비롯해 동양챔피언 이상호와 정선용, 삼성체육관 신정훈 관장 등 반가운 복싱인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대회는 5회째 대회를 주최한 홍성민 양천구복싱협회장과, 조력자로 나선 오재군 명진건설 회장이 서울시의 체육발전 진흥과 주민화합, 그리고 양천구 복싱발전에 가교역할을 하기 위해 개최된 대회였다.

 

홍 관장을 통해 알게 된 오재군(조선대ㅡ연세대 대학원)회장은 목포 출신이다.  그의 이종사촌형이 83년 로마 월드컵 국가대표 코치경력의 목포대 감독을 역임한 최진태 관장(46년 목포)인 관계로 일찍이 그 분이 운영하는 신한체육관에서 복싱에 입문한 경기인 출신 사업가다.

 

그런 관계로 동향의 박종팔·문성길과는 호형호제 하는 친밀한 관계이고, 백인철 챔프와도 허물없이 지내는 절친이다. 홍성민 협회장과 기자의 인연은 나의 사범생활 원년인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사진 왼쪽부터)제5회 양천구 협회장배 복싱대회에 참석한 탁구 여제 박미라 양천구 체육회 이사회장, 오재군 명진건설 회장, 정선용 한국권투 위원회 사무총장, 홍성민 양천구 복싱협회 회장. (사진=조영섭 기자)

 

육상선수 출신답게 차돌처럼 단단한 체형의 그는 소위 말하는 학교에서 짱이라 불리는 소년이었다. 이듬해 필자가 소속된 용신공고 복싱부에 입학한 그는  선천적으로 순발력과 펀치력이 좋은 복서였지만 집중력이 부족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전형적인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로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질 때 마다 그의 이름 석 자가 출현할 정도로 그는 문제아였다.

 

입학한 그해 단 한차례의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그는, 91년 서울신인대회에 플라이급으로 첫 출전해 결승에서 이종근(와룡체육관)에 3회 RSC승을 가두는 등 파죽의 5연승(4KO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다. 

 

패한 이종근은 92년 프로로 전향해 주니어 밴텀급에서 우승하며 홍성민에 패한 아쉬움을 달랬다. 홍성민은 제44회 전국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플라이급 결승에서 유윤철(태평선식)을 2회 RSC로 꺽고, 4연승(2KO)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복싱을 중단하고 바깥세계로 들락날락하면서 같은 토목과 1년 선배인 故 최요삼과 함께 속을 꽤나 썩인 복서였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그가 다니던 교회에 기자가 일부러 나가기도 했을 정도였다.

 

(사진 왼쪽부터)제5회 양천구 협회장배 복싱대회에 참석한 이상호챔프(동양), 오재군 명진건설 회장, 백인철 챔프, 홍성민 양천구 복싱협회장. (사진=조영섭 기자)

 

그해 겨울 그는 다시 복싱을 시작했지만 최요삼은 학원복싱을 접고 이듬해 프로로 전향하며 후에 세계정상에 올랐다. 당시 서원대와 한국체대에서 러브콜을 받았던 최요삼이 프로로 방향전환을 한 것은 결과론이지만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홍성민은 링에 오르면 경기를 하기 전 링바닥에 무릎을 끓고 기도하던 습관이 있었다. 그런 그가 92년 제42회 중고선수권대회에서 용산공고가 종합우승을 차지할 때, 밴텀급에서 3연속 KO퍼레이드를 펼치며 전국재패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나에게 보은을 했다.

 

탄력을 받은 그는 그해 캐나다에서 벌어진 세계청소년대회 국내선발전에 출전해 준결승에서, 같은 해 김명복배 결승에서 임재환(대전체고)을 꺽고 우승을 차지한 리라공고 문철웅(호남대)과 맞대결해 치열한 사투를 펼친 끝에 26 : 23 으로 판정승하며 기염을 토했다.

 

결승에서 이창근 감독이 이끄는 대헌공고 박상민(경희대)에게 16 : 11 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나의 지도자 생활 중 가장 감격적인 승리였다. 홍성민의 펀치력은 1992년 5차방어를 앞둔 문성길과 공개스파링(원당 구민회관)에서 문성길을 녹다운 시킬 정도로 메가톤급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32전 27승(18KO승)5패를 기록한 후 93년 용인대에 특기생으로 입학을 했지만 다시 길거리의 파이터로 변신하며 사실상 복싱을 접는다.

 

(사진 왼쪽부터)제5회 양천구 협회장배 복싱대회에 참석한 백인철챔프, 이제경 코리아부동산 경제연구소 대표, 오재군 명진건설 회장, 박종팔 챔프. (사진=조영섭 기자)

 

대학 2학년 때 프로 행을 시도했고 국군체육부대에서 선수생활을 연장하려 했지만 세월은 그를 기다려주질 않았다. 전역 후 2002년 어느 날 신비한 영적체험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그는 종암동에 있는 전 WBC 밴텀급챔피언 변정일(66년 태안)이 운영하는 복싱체육관에서 사범 생할을 하면서 그의 복싱 2회전이 시작된다. 

 

부족한 경비는 생수배달을 병행하면서 뛸 정도로 환골탈태한 성실한 청년으로 변해있었다. 2005년 그는 부지런히 돈을 모아 서울 양천구 목동에 첫 SM체육관을 설립한 후 15년이 지난 지금은 서울·경기 지역에만 체육관 10개를 직관하는 대표가 되었다. 믿음과 신뢰의 아성을 구축한 후 쌓아올린  견고한 탑이라 생각한다. 

 

그는 목동에 오래전 아파트도 구입했고 버스 2대에 요트 3대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 인근에 SM복싱 연수원도 운영하면서 국민대에 출강하고 있 다. 전국 3천명여 명의 체육관 관장 중 가장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는 선두 주자다.

 

사범생활과 생수배달을 하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혜롭게 기다릴 줄 알았던 그였기에 최후에 웃는 자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자와 뜻하지 않은 일로 20개월 여 담을 쌓고 지내는 냉각기도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쿨하게 회귀했다. 며칠 전 그가 나에게 “선생님과 저와 인연은 천륜입니다”라는 말에 굳어있던 마음이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댐은 수문을 열어야 물이 흐르듯이 사람은 마음을 열어야 정이 통하는가보다. 그의 건승을 빈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베냐민 19/10/23 [08:47] 수정 삭제  
  한국 복싱의 역사 조영섭 관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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