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하이퍼텍스트’ 메이킹

박항준 | 기사입력 2019/10/15 [13:29]

[박항준 칼럼] ‘하이퍼텍스트’ 메이킹

박항준 | 입력 : 2019/10/15 [13:29]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그의 저서 에디톨로지의 서문에서 하이퍼텍스트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어느 날 철학과 교수들과의 모임에서 김정운 교수가 묻는다. “이 교수의 전공은 니체, 박 교수의 전공은 쇼펜하우어였지? 그럼 당시 니체의 전공은 무엇이었을까?” 왜 우리는 수백 년 전 철학자들의 텍스트 안에 갇혀 사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다. 왜 수백 년 전 그들이 주장한 내용을 21세기인 지금 그대로 학생들에게 주입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을 뛰어넘는 철학자들은 왜 탄생하지 않는 것인가김정운 교수는 이제 진정한 하이퍼텍스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스승과는 다른 이론을 정립했다고 해서 이단이 되고 그름이 된다는 사고가 없었기에 서양은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으로 사회가 발전한다.

 

반면 동양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는 율법적 문화가 정착했다. 서양철학과 비교하면 동양철학은 워낙 깊고 넓은 철학적 바탕을 갖췄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승의 텍스트를 감히 비판할 수도 없는 문화는 아쉬운 대목이다. 심지어 비판하면 이단이 되고, 정죄된다. 2500년간 공자의 텍스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가 아직도 공자의 텍스트 안에서 정쟁을 하고 있다.

 

정치인은 정당이 결정한 사항은 그대로 따라야 한다. 아니면 배신자 취급을 받거나 탈당해야 한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국회에 들어가는 순간 정당의 거수기가 돼야 하며, 자신들의 정강·정책을 변호하는 궤변론자가 된다. 사회 정의와 효율성 면에서 아무리 상대 당의 의견이 옳다고 하더라도 상대 당의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것은 타협이자 배신이다.

 

이러한 텍스트 가두리에 모두가 갇혀 있다. 수천 년간의 갇힘 속에 그냥 살아왔다. 조선이 망하고 중국이 망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그냥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국민이 제 목소리(텍스트)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텍스트를 만드는 기준이 서 있지 않고, 서로의 텍스트들을 콘텍스팅할 프로세스도 합의되지 않았다. 그러니 제대로 된 하이퍼텍스트가 탄생할 리가 없다. 그래서 각자 제 목소리를 내는 지금의 사회가 매우 혼란해 보인다.

 

지금이 기회다. 산업화 사회의 격동 속에 60년간 압축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우리 국민은 자기의 텍스트를 갖출 기회가 부족했다.

 

그 대안으로 제대로 된 지도자를 갈급해 왔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텍스트를 제시한 지도자들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다. 그리고 현재의 대통령도 그래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의 주관(텍스트)이 뚜렷한 세대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유발 하라리가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주장한 새로운 종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세대차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언어와 생각,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외래종()’의 탄생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종()들은 자신들이 텍스트를 명확히 제시하고, 이 텍스트와 다른 텍스트를 가진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감히 동양의 금기가 깨지는 것이다.

 

대중이 주도(crowd-based)하는 시민혁명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직접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탄핵당하는 무혈혁명 같은 초유의 사태가 대한민국에서 생겼다. 이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정치인의 텍스트를 맹종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새로운 물결이 우리 사회에서 요동치는 것이다.

 

이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번이야말로 공자의 텍스트로부터 독립할 절호의 기회이며, 국민이 개·돼지가 아님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국민이 자기 목소리(텍스트)를 내고, 국민의 텍스트로 정치인들을 교화할 기회가 온 것이다. 또한, 국민통합이라는 형이상학적 구호가 아닌 진정한 통합을 위해, 각자의 텍스트를 주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본질적 합의의 결과물인 하이퍼텍스트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한 지금이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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