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소포 / 이성선

서대선 | 기사입력 2019/10/07 [07:40]

[이 아침의 시] 소포 / 이성선

서대선 | 입력 : 2019/10/07 [07:40]

소포

 

가을날 오후의 아름다운 햇살 아래

노란 들국화 몇 송이

한지에 정성들여 싸서

비밀히 당신에게 보내드립니다

이것이 비밀인 이유는 

그 향기며 꽃을 하늘이 피우셨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와서 눈을 띄우고

차가운 새벽 입술 위에 여린 이슬의

자취 없이 마른 시간들이 쌓이어

산 빛이 그의 가슴을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에게 드리는 정작의 이유는

당신만이 이 향기를

간직하기 가장 알맞은 까닭입니다

한지같이 맑은 당신 영혼만이

꽃을 감싸고 눈물처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추워지고 세상의 꽃이 다 지면

당신 찾아 가겠습니다

 

# 당신께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김영란 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받게 되실 이 “소포”는 수상한 거래의 조건으로 보내는 사과 상자도 아니고, 케익 상자도 아니고, 위험한 물건은 더더욱  아닙니다.

 

“한지에 정성들여 싸서/비밀히” 보내드리고 싶은 이 “소포”를 받게 되실 당신께선 비록 땅에 발붙이고 아웅다웅 가난하게 사는 삶일 지라도, 태양의 운행이 일정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늘 길을 열어주고, 구름의 자유로운 여행을 방해하지 않으며, 바다의 물때를 돌보는 달의 운행을 보살피고, 백만 광 년 전 떠나온 별들이 눈물처럼 반짝이며 잠 못 드는 사람들 창가에서 친구해주고, 계절의 운행에 따르는 지상의 생명들 일생을 묵묵히 지켜주는 하늘의 섭리를 통찰할 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정작의 이유는” “한지같이 맑은 당신 영혼만이” 한 송이 “노란 들국화”가 어떻게 폭설과 한파를 견디고, 가뭄과 땡볕과 태풍과 폭우를 견디고, “가을날 오후의 아름다운 햇살 아래” 피어있는지 알고 있기에, 이 “소포”를 받게 되는 당신은 “꽃을 감싸고 눈물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추워지고 세상의 꽃이 다 지면/당신 찾아 가겠습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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