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쌍용차-②] 드럼통의 신화, 집념이 다는 아니었나

대우그룹으로 끝난 하동환자동차제작소

성상영 기자 | 기사입력 2019/10/04 [08:14]

[길 잃은 쌍용차-②] 드럼통의 신화, 집념이 다는 아니었나

대우그룹으로 끝난 하동환자동차제작소

성상영 기자 | 입력 : 2019/10/04 [08:14]

196667일 하동환자동차공업()이 만든 모델명 ‘R-66-B’ 1대가 5200달러에 브루나이에 수출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자동차 수출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의 첫 페이지를 쓴 하동환자동차공업은 훗날 쌍용자동차로 이어진다.

 

쌍용차는 하동환자동차공업 때부터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격렬한 부침을 겪었다. 국내에 남은 5개 완성차 기업 중 어느 하나 사연 없는 곳이 없다지만, 쌍용차는 유난히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쌍용차가 또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776억원의 어닝쇼크를 맞은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 상해기차(상하이자동차)에 골수까지 빨렸던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고도 티볼리로 일어섰던 만큼 역량을 갖춘 회사라는 게 안팎의 시각이다. 쌍용차는 또 한 번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드럼통 버스로 이룩한 첫 자동차 수출

 

하동환자동차공업의 창업주인 고 하동환 회장은 19541월 서울 마포구 창천동 집 앞마당에 천막 공장을 세우고 하동환자동차제작소를 설립했다. 회사 명칭에서 보듯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이던 당시는 모든 물자가 부족했다. 미군이 남기고 간 온갖 물건을 고쳐서 쓰거나 하는 정도가 거의 전부였다. 하동환자동차가 처음 만들었던 버스도 그랬다. 미군 트럭을 불하받아 엔진과 변속기, 차축을 떼어내고 철도 레일을 잘라 붙여 프레임을 만들었다. 또 드럼통을 망치로 펴서 차체로 사용했다. 하동환자동차는 변변한 장비 없이 사람 손으로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 월남(베트남)으로의 수출을 위해 선적 중인 하동환자동차공업의 버스. (사진제공=쌍용자동차)

 

1962년 서울 영등포구 구로동(현재의 구로구 구로동)으로 공장을 옮긴 하동환자동차는 드럼통 버스를 만든 지 10여 년 만에 브루나이를 비롯해 태국, 월남(베트남) 등 해외로의 수출을 성사시켰다.

 

이 무렵 하동환자동차가 생산한 20인승 마이크로버스는 국내의 부족한 여객 수송 인프라를 보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동환자동차의 버스는 1960년대 서울 시내버스의 70%를 차지할 만큼 널리 쓰였다.

 

그러던 1967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동차공업 일원화 정책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대형차 생산업체인 하동환자동차를 소형차 회사인 신진자동차공업 계열로 편입시킨다. 군소 자동차 제조사를 계열화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이유였다.

 

신진지프의 짧은 전성기와 전세 역전

 

신진자동차 역시 하동환자동차와 비슷한 시기에 미군의 차량을 불하받아 사업을 시작해 사세를 넓혔다. 하동환자동차가 대형차량을 중심으로 만들었다면, 신진자동차은 승용 차량도 제작했다. 일본 토요타와의 기술 제휴 결과물인 코로나(1966), 크라운(1967), 퍼블리카(1967) 등이 그것이다. 신진자동차는 버스부터 승용차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을 장악했다.

 

국내 최초의 민간용 지프(JEEP)’가 나온 때는 이 무렵이다. 신진자동차는 196911월 미국의 카이저 지프에서 부품을 받아 신진 지프를 생산했다. 신진자동차의 지프는 19703월까지 인천 부평공장에서 450대가 생산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이에 신진자동차는 부산에 3500(11570) 규모의 지프 생산 공장을 지으며 밀려드는 주문에 대응했다.

 

▲ 신진자동차공업의 신진 지프. (사진제공=쌍용자동차)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신진자동차는 미국의 아메리칸 모터스 산하 지프사()5050 합작법인을 세웠다. 지프 생산부를 따로 분리해 신진지프자동차로 독립시킨 것이다. 197410월에는 밴 타입과 오픈카를 비롯해 총 7종의 지프를 내놓기도 했다. 밴 타입의 경우 배기량은 3800cc, 최고속도는 시속 140km에 달했다.

 

그러나 1973년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며 제1차 석유파동(오일쇼크)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국내 자동차 산업의 규모는 40% 이상 위축되며 직격탄을 맞았다. 게다가 19784월 아세아자동차에서도 부품을 국산화해 2000cc4기통 지프를 생산하면서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더욱 떨어졌다. 결국은 아메리칸 모터스가 철수하고 만다. 지프 브랜드 철수에 따른 상표권 계약 만료로 인해 신진지프자동차는 신진자동차로, 19814월 다시 거화로 이름을 바꾼다.

 

앞서 1975년 하동환자동차가 신진자동차에서 독립했다. 하동환자동차는 신진자동차에 인수된 이후 휠 디스크를 중심으로 자동차부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19772동아자동차로 사명을 바꾸고, 197912월 평택공장을 준공했다. 198412월에는 과거 자신을 인수했던 거화를 인수한다.

 

▲ 동아자동차 평택공장. (사진제공=쌍용자동차)

 

한국인은 할 수 있다코란도의 탄생

 

동아자동차의 거화 인수는 모기업인 신진자동차그룹이 해체 수순을 밟으면서 이뤄졌다. 1970년대 초까지 사업 확장을 지속하던 신진자동차그룹은 70년대 후반에 들어 급격하게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이때 신진자동차그룹의 계열사는 신진지프(거화)를 포함해 4개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에 오너 부자간 경영권 분쟁까지 겹친다.

 

거화는 동아자동차에 인수되기 전 한 가지 유산을 남긴다. 19829월 지금의 코엑스에서 개최된 서울국제무역박람회에 코란도(KORANDO)’ 브랜드를 내놓은 것이다.

 

코란도의 이름은 한국인은 할 수 있다라는 뜻의 영문 코리안 캔 두(Korean can do)’를 줄인 말이다. 아메리칸 모터스와의 관계가 끊기면서 기존의 지프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됐는데, 한국인은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때까지는 코란도 지프와 같은 명칭이 사용되며 과도기적 성격을 가졌다.

 

동아자동차는 1985년 온전한 코란도를 내놓는다. 그해 8월 국내 최초로 사무실 겸 주택용 하우스 트레일러를 개발한다. 이 트레일러는 소파 겸용 침대와 싱크대, 가스레인지, 찬장, 옷장 등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신문을 보면 이동 콘도라는 설명도 나오는데, 이때는 지금처럼 캠핑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탓에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 거화에서 1982년 발표한 코란도. (사진제공=쌍용자동차)     © 성상영 기자

 

◇ 쌍용그룹→대우그룹, 그리고 비극의 시작

 

동아자동차는 이후 쌍용그룹에 인수되기까지 전성기를 구가한다. 고속버스는 물론 트레일러, 소방차를 비롯해 200여 종의 특장차를 생산하며 연간 8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값이 600원에서 800원 정도라고 하는데, 800억원이면 엄청난 액수다.

 

그러던 198610월 동아자동차는 쌍용그룹에 넘어간다. 창업주인 하동환 동아자동차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지분 19.8%를 주당 1500원에 쌍용그룹에 양도한다.

 

회사가 어려워서라기보다 하 회장이 쌍용그룹에 넘겼다고 보는 게 맞다. 1986315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하 회장이 평택공장에서 직접 자동차 밑에 드러누워 하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일화가 소개된다.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가 회사를 아무 생각 없이 쌍용그룹에 넘겼을 리는 없다는 얘기다. 빚을 내서 사업하기를 꺼린 탓에 자동차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자본력 있는 기업이 회사를 맡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지금의 평가다.

 

19883월 동아자동차가 이름을 바꾸면서 드디어 쌍용자동차가 간판을 걸었다.

 

하지만 쌍용그룹은 자동차 부문의 누적된 적자로 1997년 외환위기 때 공중분해가 되고 만다. 19876월 영국 팬더자동차의 경영권을 인수해 19921칼리스타를 내놨다가 단 78대 팔리는 데 그치며 쓴맛을 봤다. 1993년 벤츠와 기술 제휴로 희대의 역작인 무쏘를 출시하고, 1996년에는 뉴코란도를 선보였다. SUV 시장에서 선전했지만, 이때는 지금과 달리 세단이 강세였고 시류를 읽는 데 실패한 채 적자를 거듭했다. 막판에는 그룹 오너인 김석원 회장이 정치권에 눈을 돌리면서 경영에 소홀해졌고, 결국 대우그룹이 쌍용차를 차지한다.

 

문화저널21 성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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