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스토리] 공명정대한 포청천…상임심판위원 현천일

조영섭기자 | 기사입력 2019/10/03 [20:43]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공명정대한 포청천…상임심판위원 현천일

조영섭기자 | 입력 : 2019/10/03 [20:43]

올해는 수도 서울에서 전국체전 100회가 개최되는 역사적인 해다. 최초의 전국체전은 1920년 10월 26일 김좌진 장군에 의해 일본군을 섬멸한 청산리 대첩 9일 후인 11월 4일 열린 조선야구대회로, 한 세기를 맞이한 것이며 일제 강점기 온 민족의 단합을 주 목적으로 열렸던 대회였다.

 

당시 월남 이상재 선생이 두루마기를 입고 시구를 했다. 공교롭게도 월남 선생의 탄신일도 10월 26일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인생에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날,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일도 모두 10월 26일이다보니 이리저리 10월 26일은 우리 역사에서 의미있는 날인 듯하다. 

 

▲ 대한체육회 상임 심판위원 현천일 © 조영섭 기자


이런 뜻 깊은 100주년 전국체전의 기념행사가 펼쳐지는 가운데, 이번 주 복싱 스토리의 주인공은 현 대한체육회 복싱 상임심판 현천일(60년. 용인대) 위원 이다.

 

그는 31년 전 신생 용산공고팀을 이끌었고, 만 26세에 필자가 복싱계에 첫발을 내딛을 때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주면서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누구나 그렇듯 초창기 복싱판에서 필자도 온갖 서러움과 고난을 겪으며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그때 현천일은 초창기 나의 복싱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내게 다가와 꽃이 되어 준 고마운 선배다.

 

나는 그를 통해 시나브로 복싱판의 흐름을 알게 되었다. 89년 4월 용산공고에  첫 출근할 때, 당시 감독인 지세문 선생에게 인사를 올리자 대뜸 당시 복싱판 에서 활동하던 손형구·엄규환 선생을 아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다소 무시하는 듯 한 표정으로 나를 훓어보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실 83년 제64회 전국체전을 끝으로 아마복싱계를 떠나 6년 만에 컴백한 내가 누굴 기억한단 말인가. 나는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중도에 접은 한과 응어리를 후배들을 통해 만회하고 싶었다. 내 지도자생활은 그 해 첫 출전한 전국체전 선발전에서 7명의 선수가 전패, 그 중 4명은 RSC로 패하며 시작 됐다. 

 

▲ 김종철 기술위원과 현천일 전 심판위원장(우측)  © 조영섭 기자


당시 서울 리라공고 팀에는 황철순(55년, 고성)이라는 괴물 같은 인물이 모교팀 사령탑으로 82년부터 부임해 조인주·이창환·박기홍·김진호·최석만·이훈·변정일 등 수많은 스타복서들을 베출하며 탄탄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후에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용산공고 토목과 1학년 유망주 최요삼(73년, 작고)은 리라공고 2학년 이근식(한국체대)과 경기에서 치열한 타격전을 펼치며 주도권을 잡고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3:2 로 경기는 뒤집어지고 말았다.

 

부정 답안지(?)를 제출한 심판에 의해 판정이 뒤집어지자 허탈한 표정으로 서있는 나의 곁으로 심판 한 분이 지나가면서 옆에 있는 황철순 에게 “야. 3:2 나왔어‘ 라는 짧은 한마디를 툭 던지고 지나갔다. 그 심판은 내가 누군지 모르고 실언을 한 것이다. 후에 알았지만 채용석(31년생, 당시 중산체육관 관장) 심판이었다.

 

스탠드에 앉아있으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때 최요삼의 친형인 최요석과 누님인 최경애 씨도 동변상련의 심정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난 그때 알았다. 복싱판에 과거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처럼 가칭 황사모(황철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존재하며, 그들이 시멘트처럼 똘똘 뭉쳐 판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그때, 나의 시야를 가득 채웠던 심판석에서 심판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황철순의 모습은 마치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 우병우가 검찰에 출두해 팔짱을 낀 채 검사들과 대화하던 모습과도 같았다. 

 

▲ 복싱계의 대표작인 관포지교인 신성수 서울 심판 위원장과 와 현천일(우측 )상임심판위원  © 조영섭 기자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나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그때 나에게 다가와 좌절하지 말라며 내손을 잡아준 심판이 있었다. 그가 바로 오늘 복싱 스토리의 주인공인 현천일 이다. 그 역시 황철순과는 호형호제 하는 막역한 관계였지만, 반듯한 신념과 소신을 겸비한 심판이었다. 

 

나는 그를 통해 지도자로써 새롭게 눈을 떴다. 나는 복싱의 승패가 링 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밤에 역사가 이뤄진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지금은 복싱계가 정화되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그런 경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 때를  회상해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추억의 한 페이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 옛날이여’, 나의 빛바랜 추억의 장(章) 중심에  등장하는 현천일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밴텀급 동메달리스트인 장규철 관장(46년 작고)이 운영하는 남영동 두꺼비 체육관에, 문일고 1학년 때인 1977년 골목대장이 되고 싶어 복싱에 입문한 전형적인 파이터 였다  

 

묵직한 양 훅을 주무기로 김치복, 홍수환 등 역대급 복서들과 스파링 파트너로  만만치 않은 타격전을 펼치자, 그를 지도한 장규철 관장은 내심 프로로 전향시켜 세계챔피언을 염두에 두고 세심하게 조련하며 애정을 쏟는다.

 

이후 현천일은 각종 전국대회에서 비록 금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은과 동메달을 3개 획득하며 정상급 기량을 보유한 복서임을 알렸다. 이후 맞이한 79년 제60회 전국체전에 서울대표로 출전하며 금메달을 획득해 한국체대 진학을 위한 마지막 출사표를 던진다.

 

당시 출전선수 명단을 보면 △코코(CORK)급 장관호(한일고) △라이트 플라이급 김종원(한영고) △플라이급 현천일(문일고) △밴텀급 정한근(천호상전) △페더급 김학선(서울체고) △라이트급 이수노(천호상전) △라이트 웰터급 신귀항(서울체고) △웰터급 김수영(서울체고) △미들급 장한곤(한영고) 등이 주역이었다. 

 

▲ 상임 심판위원 박현교 김미혜 이혜옥 김종진 조정숙 현천일 (좌측부터)  © 조영섭 기자


후에 동양챔피언에 등극하는 이상호(원진체)도 당시 배문고 3학년으로 이 대회에 라이트 웰터급으로 출전했지만 신귀항(서울체고)에게 근소한 차로 패해 출전권을 놓친 후, 프로로 전향해 80년 MBC신인왕 최우수복서로 선정됐다.

 

한편, 본선에서 현천일은 전남 대표 성두호와 8강전에서 인상 깊은 타격전을 펼쳤지만 분패해 이듬해 인천체대에 진학했다. 일전에 고교시절 수영선수였던 개그맨 주병진이 한국체대 입학에 탈락하자 인천체대로 방향을 튼 전례와 흡사한 사례다.

 

현천일은 이후 용인대에 편입했으며 졸업 후 1986년에 서울 심판을 시작으로 94년에 중앙심판에 발탁됐고 2016 서울 심판장을 거쳐, 2018년 전국심판 중 단 6명에 불과한 대한체육회 상임심판 공개모집에 당당히 합격해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심판은 경기를 주관하는 판사로써 규칙에 의한 판결 진행을 엄격한 잣대로 조율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펜싱 에페 준결승에서  신아람 선수의 멈춰버린 1초,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다가 러시아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사건, 2016년 리우 올림픽 레슬링 16강에서 김현우의 경기오심 논란 등은 심판이 경기를 좌지 우지한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지난 2014년 9월부터 심판의 불공정성을 없애고 경기 내 올바른 판정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10개 종목 상임심판 78명을 선임해 첫 시행을 한 후, 현재는 19개 종목 1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결승전이나 입시에 직결되는 대회에 우선적으로 배정되고 있으며 오심비율이 현저히 줄어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10개월 동안 300만원의 보수를 받으며 공정하고 투명한 판정 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를 하는 포청천인 것이다. 현재 대한체육회 복싱 상임심판은  최고참 현천일 심판을 위시해 박현교, 김미혜, 김종진, 이혜옥, 조정숙 심판 등 총 6명이 포진돼 있다.  

 

▲ (사진 왼쪽부터) 방송인 송해 선생과 현천일 심판위원  © 조영섭 기자

 

현천일은 2018년 대한체육회 상임 심판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서울 심판장직을 내려놨다. 이 때 그가 후임심판장을 임명할 때 누구나 할 것 없이 대학 동기생인 복싱계의 대표적인 관포지교인 신성수를 서울 심판장으로 선임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전북 전주출신의 중앙심판위원인 이용장(60년, 전주대)을 깜짝 카드로 지명했다. 자기사람 감싸고 챙기기에 급급한 전례에 비춰볼 때 파격적인 인사였다.


모두들 의아해 했다. ‘지식은 학습에서 나오지만 지혜는 삶의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30년을 훌쩍넘은 오랜 심판 경험에서 농축된 합리적인 생각에서 나온 모범 답안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은 당시 서울시 복싱협회 회장인 박성춘(68년, 한국체대)에 의해 기각되어 신성수 심판이 ‘서울심판장’의 중책을 맡게 됐다.

 

박성춘 회장의 결단도 박수를 받을만 한 결단이었다. 자신도 호남출신이면서 지금껏 호남출신들로 이뤄진 서울복싱 협회 심판진의 수장을 과감히 물갈이 하면서, 서울 출신으로 심판장을 전격적으로 임명하며 조선 영조시대 탕평책을 재현한 사실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한펀, 이순(耳順)에 접어든 현천일은 주말이면 종로 탑골공원으로 나들이를 할적에 가끔씩 방송인 송해 선생과 조우(遭遇)하면, 거나하게 막걸리를 한잔 걸치며 담소하며 지낸다 한다. 그곳엔 송해 선생의 이름을 붙인 ‘송해거리’가 있어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구순을 넘은 송해 선생을 보면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진공상태에서 유유자적하게  사시는 그분을 보면서 자신의 노년 밑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앞으로 복싱발전을 위해 진력을 쏟으며 전력투구하길 바란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베냐민 19/10/03 [22:35] 수정 삭제  
  멋있습니다!!
김정희 19/10/07 [13:01] 수정 삭제  
  지금도 복싱계의 심판들 부정답안지 여전합니다 답은 이미정해져있고 선수들만 최선을 다해 경기합니다 상대선수가 이긴경기를 해도 약속된선수에게 몰빵으로 점수 몰아주는 저지심판 5명들 항의해도 심판들은 모른척합니다 자기들이 실수를하든, 잘못버튼을눌렀든 그냥 모른척하고 중앙심판교육받을때 설사 잘못했더라도 내가맞다고 생각하고 항의에 지지말라고 그런것도 교육다 시키거든요 한심한 복싱 심판들 반성하시고 자질없는 심판들은 제발 심판보러오지마세요, 선수 죽이러오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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