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간 텍스트 전쟁

박항준 | 기사입력 2019/09/02 [14:41]

2500년 간 텍스트 전쟁

박항준 | 입력 : 2019/09/02 [14:41]

공자의 죽음 이후 망자를 앞에 두고 장례준비를 하던 제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다. 제자들간 서열싸움도, 남은 재산 배분싸움도 아니었다. 단지 예법에 대한 문제였다. 

 

공자는 죽기 전에 자신의 죽음 이후 초상에 관하여 두 개의 예법(text)을 제자들에게 남겼다고 전해진다. ‘친부모께서 돌아가시게 되면 3년 상을 치르라‘라는 예법(text)과 ‘스승이 돌아가시면 1년 상을 치르라’는 예법(text)이었다.  

 

어찌 보면 공자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초상 기간에 대한 예법(text)을 제시했다. 문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주장(text)이 나오면서 시작된다. 공자에게 애정이 많았던 한 제자가 ‘공자님은 비록 스승이지만 우리에게는 친아버지 같은 분이셨으니 스승님의 상은 3년 상을 치르자’고 예법에 없는 새로운 주장(text)을 편 것이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주장(text)이라 마음이 흔들리는 제자들이 생겨났다.   

 

반면 공자가 남긴 예법(text) 그대로 1년 상을 준비하고 있던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이들은 졸지에 스승을 아버지처럼 여기지 않은 비인간적인 제자가 되어버린다. 차라리 1년 상을 치러야 한다는 자신들의 예법이 틀렸다라고 한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말 일이다. 그러나 스승이 남긴 예법 그대로 수행하려 한 것뿐인데 비인간적인 제자들이 되어버리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스승을 가벼이 여긴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스승이 내리신 예법(text) 그대로 1년 상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text)을 계속 고집해야만 했을 것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공자 사후 2500년간 동양은 유교적 예법이라는 텍스트(text)에 갇혀 새로운 혁신적인 사고(hypertext)를 창조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서양이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을 통해 새로운 사고(hypertext)를 지속적으로 재창출하는 동안에 동양은 텍스트의 굴레에 갇히고 만 것이다. 

 

선왕의 소복을 얼마나 오래 입어야 하는가? 대왕대비의 소복 길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모는 몇 년 상을 치러야 하는가? 전쟁이 나면 부모의 상을 접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라는 예법의 텍스트 안에 갇혀 화만 내고 있었던 것이다. 조그마한 텍스트의 변형에 따라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세력이 갈려 서로를 견제하고 상대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지난 1999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의 저자가 공자를 모독했다며 성균관 유림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대법원까지 가서 저자가 승소한 이 사건도 같은 사안으로 보인다. 저자가 책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공자 이론에 대한 모욕보다는 예법이라는 텍스트에 갇혀 서로 자기만 옳다고 우기면서 살고 있는 우리를 비웃는 내용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2500년간 갇혔던 텍스트 굴레를 글 몇 자로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 전체가 불완전한 텍스트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순간 여러분은 이제 텍스트로부터 탈출할 자격과 준비가 되어있음에 틀림없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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