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아버지와 권위

손봉호 | 기사입력 2019/08/12 [08:50]

[손봉호의 시대읽기] 아버지와 권위

손봉호 | 입력 : 2019/08/12 [08:50]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가정이 해체되고 있다.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줄고, 이혼이 빈번하며,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아비나 어미도 자녀를 두고 가출해 버려 조손가정이 늘고 있다. “가정, 달콤한 가정(home, sweet home)”은 옛날 동요에서나 나옴직한 말이 되고 말았다. 

 

가정의 기능이 모호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장이 가족의 생계와 안전을 책임졌다. 그래서 부모가 없는 고아와 남편이 없는 과부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가장의 기능이 조금씩 국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복지란 이름으로 국가가 경제적 수요를 공급하고 법률과 공권력으로 개인의 안전을 보장한다. 고아와 과부가 과거만큼 힘들게 살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자녀의 교육도 가정이 책임졌다. 그래서 버릇없는 자를 ‘호래자식’이라고 욕했는데 이는 아비 없이 자라 막돼먹은 사람이란 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등 교육기관이 양육과 교육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변화에도 대부분의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다수는 가정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사람들이 가정 해체의 위험을 느껴서 오히려 더 애써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가정은 본래 행복의 근원이란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국가가 아무리 치밀하게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해 주고 우리의 일상생활을 보살펴 준다 해도 가정의 역할을 대행할 수는 없다.

 

국가의 행위는 제도와 법, 규정을 따라야 하고 어떤 제도나 법, 규정도 개인의 다양한 수요를 다 충족할 수 없다. 국가에 한 개인은 다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우리 하나하나는 대체 불가능한 독특한 존재다. 아내와 남편, 아버지, 어머니는 다른 사람과 바꿀 수 없다. 누구도 자녀와 바꿀 수 없다. 국가의 보호와 복지는 개인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 

 

그리고 꿀벌이나 개미의 군거(群居)를 유지하는 본능적 질서와는 달리 모든 인간 공동체에는 인위적인 질서가 필요하고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뜻이 맞더라도 가정에는 질서가 있어야 하고, 그 질서를 위해서는 권위 행사자가 있어야 한다. 하루는 아버지가 명령하고 다음 날엔 어머니, 그다음 날엔 아들이 가정의 중대사를 결정할 수는 없다. 

 

대부분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가정의 권위를 행사해 왔다. 그것은 우연히 형성된 전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양육해야 하므로 주로 집에 머물러야 했으며 섬세하고 자상해서 아기의 모든 구석을 잘 살펴야 했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바우텐다이크 (J. J. Buytendijk)는 여자의 시각은 치밀하다(intensive)고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을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했고 그 사회적 책임 가운데는 종교적, 교육적 책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강해야 하고 남자의 시각은 섬세하거나 치밀하지 못한 대신 광범위(extensive)해야 했다. 아버지가 가정의 권위를 행사하게 된 것도 이런 특징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嚴父慈母)”란 표현이 생겨나고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상당한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아버지가 수행했던 많은 업무를 국가가 대행하면서 그의 위상이 많이 약해졌다. 그러나 아기는 국가가 낳아 줄 수 없고, 갓 태어난 아기를 국가가 돌보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시대가 변해도 어머니의 역할을 불가결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만큼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사치품이 되고 만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약해지는 것은 단순히 여권이 신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의 역할 상당 부분을 국가가 대행하기 때은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가정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국가가 가정의 권위를 대행할 수도 없다. 가정의 영역주권은 국가가 침범할 수도 없고 침범해서도 안 된다. 아버지가 아니면 어머니라도 권위를 가져야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서고 자녀가 정상적인 훈육을 받을 수 있다. 아직은 아버지가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자녀가 결정하고 부모가 그에 순종하거나 아내가 명령하고 남편이 그에 따르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생소하고 어색하다. 

 

아버지가 가장이 되어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아버지가 다른 식구보다 더 지혜롭거나 강해서가 아니다. 옛날 왕조시대나 지금의 북한에서는 특별한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통치자가 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선거에 이겨야 대통령이 된다. 오늘날 가장의 권위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서를 위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가능한 한 의논하여 모든 것을 결정하되, 의견이 엇갈리면 의장이 최후의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버지가 의장이 되는 것이 여러 면에서 편리하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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