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비화] WBA Jr미들급 챔피언 유제두의 라이프 스토리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8/01 [23:30]

[조영섭의 복싱비화] WBA Jr미들급 챔피언 유제두의 라이프 스토리

조영섭 기자 | 입력 : 2019/08/01 [23:30]

지난 6일 심영자 회장(프로복싱 여성 프로모터) 희수연에 전 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태양체육관 유제두 관장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젊은 날의 청초함은 눈가의 깊은 주름으로 변했지만 그의 모습에는 고결한 아름다움이 묻어있다.   

 

장정구를 비롯해 황충재, 백인철, 김지원 등 많은 권투인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담담한 표정, 과묵한 행동과 함께 그럴싸하게 포장된 일회용 이벤트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기에 존경을 받는 선배로 꼽히는 것 같다.  

 

오늘 복싱 비화의 주인공인 유제두는 다들 궁핍했던 70년대를 전후한 그 시절,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드라마보다 더 파란을 겪었던 사람이기에 그의 일대기를 소개한다.

 

당시 한국권투위원회(KBC)에는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처럼 등록된 프로복서만 350명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세계챔피언의 자리는 고작 26개 밖에 없어 정상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맨주먹으로 챔피언의 꿈을 실현하면 변변한 스포츠가 없던 그 시절엔 국민적 스타로 추앙받으면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시장의 영세성 때문에 세계타이틀전의 유치가 극히 힘든 국내프로복싱 풍토에서 세계타이틀전 기회를 잡는 것조차 하늘에서 별 따기처럼 힘든 어려웠던 그 시절, 유제두 챔프는 세계 정상에 올라 희비 쌍 곡선을 그리면서 낙차 크고 굴곡 많았던 삶을 살았다.  

 

▲ (사진왼쪽부터 시계방향) 타이틀을 획득한후 청와대를 예방 박정희 대통령에게 훈장을 수여받는 유제두/ 허리케인 체육관 김준홍관장과 유제두챔프(우측) / WBA 미들급 챔피언 유제두 / 75년 6월 세계정상에 등극하는 유제두 (사진=조영섭)


그는 1945년 전남 고흥태생이다. 고흥은 정계의 장세동 박상천을 비롯해 문화체육계에 천경자, 박노해, 김일, 신진식, 유중탁, 장외룡, 오광수, 백인철 등 스타들이 나고 자란 곳이다.

 

유제두는 초등학교시절엔 육상선수로, 이후엔 테권도와  축구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탁월한 소년 이었다. 1965년 고교 졸업후 상경한 그는 마포제일 체육관 이영환 씨의 지도로 복싱을 수련, 웰터급에서 48회·49회 전국체전 본선과 성의경 배 등에서 값진 메달을 획득하며 정상급의 실력을 과시한다.  

 

68년 멕시코올림픽 에서도 최종선발전에 진출할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그해 10월 프로로 전향한다. 하지만 69년 8월 7전에서 임병모 에게 첫 패배를 당하며 성장통을 치른 후 70년 4월 국내 타이틀을 앞두고 군대 징집영장이 나오면서 선수생활이 중단될 위기에 빠진다. 

 

그 때 천우신조(天佑神助)로 때마침 윤필용 장군에 의해 수경사가 창단됨으로써 허버트강, 장규철, 홍수환 등과 현역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고 이후 6년 6개월 동안 동양타이틀 14차 방어에 성공하며 34연승(2무 포함)을 기록한다. 

 

결국 그는 75년 6월 WBA 주니어미들급 1위에 올라선다. 당시 챔피언 와지마(일본)는 24살까지 트럭운전수로 일하다 25세에 프로복서가 된 일본 복싱사에 입지전적(立志傳的)인 복서였다. 미국의 브릴랜드가 7살  휘테커가 8살 호야가 9살에 복싱을 배운 것을 상기시켜보면 대기만성의 복서였다. 

 

1943년 북해도 출신의 그는 68년 프로에 데뷔하여 26전 째인 71년 10월의 마지막 밤 이태리의 멜로 보시를 꺽고 정상에 올라 6차 방어에 성공한 후 74년 6월 7차 방어전에서 미국의 오스카 알바라도(59전 52승 39KO승 6패1무)에게 KO패로 타이틀을 상실했다가 75년 1월 재대결에서 다시 탈환, 1차 방어를 유제두로 선택해 타이틀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당시 38전 31승 25KO승 2무 5패를 기록한 챔피언 와지마 고이치는 흡사 수양버들처럼 쉬지 않고 몸을 흔드는 일명 ‘개구리 뜀’이라는 더킹모션을 이용하여 상대를 현혹시키는 기교파 복서였다.

 

한편, 도전자 유제두는 타이틀을 앞둔 3월의 타이틀 전초전에서 오가키 노부유키를 상대로 7회에 3차례 다운을 빼앗고 2분 4초에 KO승을 거뒀는데, 와지마와 벌인 타이틀 매치에서도 7회에 3차례 다운을 빼앗고 2분 4초에 KO승을 거둔다.

 

2경기 연속 같은 라운드 같은 시각에 동일한 내용으로 큐슈의 고쿠라 체육관에서 와지마를 고꾸라트리면서 화려한 대관식을 치른 것이다. 지난 세월 형극(荊棘)의 세월을 걸으며 눈물젖은 샌드백을 두들겼던 그가 김기수 홍수환에 이어 챔피언의 월계관을 쓴 것이다. 

 

경기 후 청와대를 예방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3백만원의 하사금을 그에게 전했는데 당시 서울의 웬만한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큰돈 이었다.  

 

▲ 유제형 과 유제두 챔프(우측) (사진=조영섭) 


당시 유제두는 3명의 심판 전원이 일본인으로 포진된 가운데 경기를 치러 정상에 올랐고, 1차 방어와 2차 방어전도 역시 원정 경기 속에서 일본인 심판이 2명씩 포진된 가운데 경기를 치렀다. 예나 지금이나 원정경기에서 승리하기는 참으로 힘들다. 74년말 그해 국내에서 벌어진 국제경기에선 29전 28승 1무를 기록했지만 원정경기에선 10승 17패를 기록한 전적을 보면 원정경기의 힘겨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유제두는 1차 방어전에선 3만불, 2차 방어전에선 4만불의 파이트머니를 받았는데 77년 2월 '슈거레이 레너드'가 프로 데뷔전을 치를 때 받은 파이트머니가 4만 불임을 감안하면 쓴웃음만 나온다. 

 

유제두는 김기수의 ‘내주먹을 사라’는 영화에 이어 2번째로 그가 고흥에서 상경해 세계정상을 차지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 ‘눈물 젖은 샌드백’에 직접 출연하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급부상한다. 그때 받은 개런티만 7백만 원을 상회할 정도였으니 당시 그의 인기는 현재의 방탄소년단을 능가하는 국민적 영웅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진 1차 방어전에서 미사코를 6회 KO로 잡은 유제두는 이후 76년 2월 와지마와 벌인 재대결에서 8개월만에 아쉽게 벨트를 푼다. 지금도 회자되는 미스테리인 이른 바 ‘딸기사건’이다. 유 관장은 할 말은 많아 보였지만 말을 아꼈다. 

 

전력을 추스린 그는 77년 8월 올림픽대표 출신의 24전 21승(20KO)1무 2패를 기록한 임재근과 라이벌전에서 7회 회심의 어퍼컷을 작렬시키면서 KO승을 거두며 다시 한 번 세계타이틀을 노렸지만 엉뚱하게도 KO패 당한 임재근이 에디 가조와 타이틀전을 치르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이제 복싱을 접어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78년 12월 강흥원을 상대로 21차 방어전을 끝내고 55전 50승(29KO승) 3패 2무를 기록한 그는 결국 링을 떠난다. 그때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유제두는 이후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복싱의 길만 걸어온 대표적인 복싱인이다.

 

80년 해체된 수경사가 재 창단되자 유제두는 감독을 맡아 이승훈, 백인철, 유명우, 박영균, 이경연, 장태일 등을 정상 정복에 성공시키면서 복싱 활성화에 불을 지피면서 88년 해체 될때까지 복싱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그는 83년 구로구 독산동의 5층 건물에 태양체육관을 설립하여 IBF 주니어밴텀급 챔피언 장태일을 비롯해 동양 웰터급타이틀을 12차례 방어한 박정오와 장영순, 차남훈, 정선용, 김성윤 등 5명의 동양챔피언, 그리고 나치오, 송성운, 최응산, 김오남 등 유망주들과 황이태(한국체대), 송유남, 정경배(수원대) 등 국가대표 상비군들도 다수 배출했다.

 

유제두 관장의 막내 동생인 유제형(58년. 26전 23승 19KO승 3패)도 남산공전시절 천갑수(한국체대)를 꺽고 대표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정상급 실력을 보여줬던 복서로 프로입문해서도 13연속 KO승 행진을 벌이다 85년 4월 32승 32KO승 1패를 기록한 백인철(60년 고흥)에게 좌초되면서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백인철도 유제두 관장이 마포에서 유덕체육관을 운영할 때 기본기부터 직접 가르친 제자였다는 사실이다. 후에 백인철은 권재우 사단에 합류 세계정상에 올랐지만 그의 세밀한 테크닉은 유제두 관장의 손끝에서 빚어진 작품이라는 데는 백인철 자신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유제두 관장은 슬하에 3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성균관대와 서강대를 졸업하여 자식농사도 성공적으로 일군 복싱인이라 더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든 것이 아니고 단 하루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듯이 한 세기에 달하는 한국복싱역사에서 수많은 선배들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이 범벅되어 한국복싱의 초석을 일궜다는 현실에 경의를 표한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베냐민 19/08/02 [10:51] 수정 삭제  
  늘 좋은 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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