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적막 / 이원규

서대선 | 기사입력 2019/07/09 [08:47]

[이 아침의 시] 적막 / 이원규

서대선 | 입력 : 2019/07/09 [08:47]

적막

 

개가 짖는 다고 따라 짖으랴

 

그 뉘시오?

외딴집 앞마당에 홍매화 피는지

강물 속으로 황어 떼 오르는지

바람결에 킁킁거릴 뿐

 

혀를 말아 넣은지 오래

자라목 내밀며 섬진강을 바라본다

 

# 어떤 개가 따라 짖을까? 묶인 개들이다. 위급상황에 직면한 개는 도망가거나 그 상황과 직접 부닥쳐야 한다. 그러나 묶여 있는 개는 도망 갈 수 도 없고, 위급상황에 정면으로 부닥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위급상황과 마음의 갈등을 알리기 위한 '짖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끝도 없이 짖어 댄다. 그 상황에 전염된 다른 묶인 개들이 “따라 짖어 주는” 것이다. 묶인 채 먹이를 얻어먹는 삶을 선택한 개들의 패거리행동이다.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우리가 뉴스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알게 된 사사로움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먹히고 있으며, 우리의 삶이 내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없어 질 때,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단순한 가십에 의해 지배되어 자신의 말은 결국 소멸되고 말 것이다’ 라고 전언 하였다. 먹이에 묶인 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따라 짖다”보면 어느새 자기는 소멸되고 오욕과 비방 속에서 쓸모없이 버려지게 될 것이다.   

 

‘자발적 고독’은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아무런 인지 작용을 하지 않는 휴식 상태에서 활성화 되는 부위가 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르는 이 부위가 활성화 되면 창의성과 통찰력이 높아지며, 특정 수행 능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외딴집 앞마당에 홍매화 피는지/강물 속으로 황어 떼 오르는지” “혀를 말아 넣”고 “적막” 속에서 자신을 통찰해 보는 삶도 필요하다. ‘적막해야 마음의 근원이 드러난다(寂寞見心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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