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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종교개혁 시대의 예술

손봉호 | 기사입력 2019/04/15 [07:55]

[손봉호의 시대읽기] 종교개혁 시대의 예술

손봉호 | 입력 : 2019/04/15 [07:55]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민주주의, 인권, 보편교육, 복지, 현대 과학 등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긍정적인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영역에는 그렇게 두드러진 역할을 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바로 예술 분야다. 회화, 조각, 음악, 연극, 무용, 시, 소설 그 어느 것도 종교개혁 때문에 가능했거나 발전했다는 주장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미술은 종교개혁 때문에 오히려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개혁자들은 중세 회화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성화가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우상화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소품만 허용했다. 조각은 아예 금지했다. 중세의 성화 외에도 르네상스 화가들이 즐겨 그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 혹은 인물들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루터는 작곡을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으나 특별히 장려한 것 같지 않고 칼뱅의 개혁교회가 예배 때 부른 시편은 그 곡이 매우 단조하다. 예술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나 사치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근면과 금욕을 강조한 칼뱅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칼뱅은 제네바 시에서 소방 문제까지 관여했지만 예술을 장려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예술가들의 창조적 욕구를 완전히 꺾어 버린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성자나 신화 대신에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풍경에 눈을 돌렸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전시된 브뤼헐(P. Bruegel)의 풍속화나 네덜란드의 판 라위스델(J. van Ruisdael)의 풍경화는 대표적이다.

 

루터를 존경했던 독일의 뒤러(A. Dürer)와 다음 세기에 활약했던 네덜란드의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는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신실한 화가였고, 바하(J. S. Bach)와 헨델(G. F. Händel)은 가장 뛰어난 개신교 작곡가였다. 물론 예술의 특성상 그들의 그림이나 음악에 종교개혁의 영향이 어떤 것인가를 꼭 찍어서 지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경건의 깊이를 느낀다고 한다.

 

종교개혁의 덕을 가장 크게 본 영역은 역시 문학이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도 위클리프(John Wycliffe), 후스(Jan Hus), 루터 등이 성경을 영어, 보헤미아어, 독일어 등 자국어로 번역한 것과 루터와 칼뱅이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보편교육을 강조한 것은 문학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도 책의 보급과 독자의 확대에 큰 도움을 주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도 뛰어난 시인, 소설가, 희곡 작가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들의 독자는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소수의 귀족들과 사제들에 국한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보카치오(G. Boccaccio) 같은 예외가 없지 않았지만 문맹이 다수인 상황에서는 대중 문학이 활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학자들 외의 문필가들이 그들의 작품에 성경의 내용보다는 고대 그리스 신화나 고전들을 더 많이 인용하거나 암시한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고 평신도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자 문학작품에 자연히 성경의 가르침과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눈에 관한 한 성경은 그리스 신화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다양하므로 문학작품은 그만큼 더 깊어지고 풍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학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예술 발전에 종교개혁이 결정적으로 공헌한 것은 역시 개인의 자유가 신장된 것이었다. 창작 활동에는 자유가 절대적인 조건이고 그 자유는 개인의 것이라야 한다. 개인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 즉 자율적인 것에 어떤 외부의 강압, 정신적인 압력도 예술가의 창작활동에 방해가 된다. 그리고 예술적 창작은 외로운 작업이다. 오늘날처럼 거의 모든 활동이 공동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예술 활동만은 팀워크로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적인 것은 보편적이지만 감정은 개별적이다. 

 

그런데 중세의 삶은 대부분 교회의 통제 하에 이뤄졌다. 신앙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제도적인 교회의 매개로 이루어져 간접적이었고 삶의 형식도 외부에서 주어진 규범에 의하여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종교적 통제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규제와 달리 정신적이므로 예술 창작에 요구되는 내적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세에도 문화 활동이 전혀 정지된 것은 아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깊은 종교적 헌신은 위대한 예술 작품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문화 활동의 다양성은 상당할 정도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종교개혁 이후에 예술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 벌어진 변화와 비교해 보면 그 시대는 역시 예술적으로는 빈곤했다 할 수밖에 없다.  

 

종교개혁이 눈에 보이는 교회의 권위를 상대화하고 누구든지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으며 개인이 교회나 사제의 매개 없이 하나님께 바로 기도하고 자신의 양심에 따른 판단과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직접 책임지는 것이 허용되었으므로 개인의 자유가 신장되고 개인주의가 강화되었다. 그런 자유가 종교개혁 이후에 예술을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의 엄청난 변화에 기본적인 토양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개인주의와 개인 자유의 신장이 오직 종교개혁 때문에만 가능했다고 할 수는 없다. 헤겔은 가족 중심적 공동사회로부터 독립된 개인이 다른 사람과 계약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과정이란 역사철학을 제시했고 퇴니스(F. Tonnies)도 비슷한 이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적 설명이고 가정일 뿐 개인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실제로 가능하게 한 것은 종교개혁이었다. 혹시 그런 변화가 인간 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종교개혁이 그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개인주의와 개인 자유의 신장이 그 자체로 반드시 긍정적이라 할 수는 없다. 기독교에도 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16세기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Erasmus)는 평소에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을 때는 앞으로 교회가 사분오열(四分五裂)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종교개혁이 신장한 자유와 개인주의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을 내다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나치게 확장된 개인주의가 사회와 문화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가를 목격하고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술의 창작활동에는 개인의 자유가 필수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술의 발전에 종교개혁이 중요하게 공헌했다 해서 오늘의 예술이 종교개혁의 정신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중세 교회나 오늘의 한국 교회 못지않게 오늘의 예술계도 돈의 유혹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는 예술만이 악의 세력인 의지가 낳는 욕망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고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이 비관적인 세상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가 오늘에 살았다면 과연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의 교회 못지않게 오늘의 예술도 개혁이 필요한 것 같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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