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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봄이 ‘엘자의 봄’이 되지않기를...

강인 | 기사입력 2019/03/21 [19:30]

한반도의 봄이 ‘엘자의 봄’이 되지않기를...

강인 | 입력 : 2019/03/21 [19:30]

▲ 강 인  

통계에 의하면 4계절 중 산업재해나 자살의 숫자가 가장 많은 계절이 봄철이라고 한다. 또한 양로원이나 병원은 물론 일반적 부음(訃音)이 이 봄날에 많이 들린다.

 

왜 일까? 꽃피고 새 지저귀고 샘물 졸졸 흐르는, '산 빛 도곤 좋아라'의 이 청록의 계절에 죽음의 소식이라니 정말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어려움이나 고난 속에서는 좀처럼 사고가 일어나거나 죽음을 결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어려움이나 고난이 닥칠수록 내면에 그에 상응하는 응전(應戰)의 의지가 거세게 일어나 이겨낼 힘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철 혹독한 한파에 잔뜩 긴장한 채 응전의 의지를 품었던 인간의 마음이 흐물거리는 봄기운에 그지없이 나약해지고 잡념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활짝 핀 꽃잎 너머에 웅크리고 있는 낙화의 비애를 예견하고, 또한 파릇한 새 순에서 머지않아 조락의 절망을 더 깊이 느끼게 되며, 마침내 사는 것조차 허황하고 의미 없게 여겨진다. 그러다 점점 의욕이 감퇴 되고 무기력해 지며 나중에는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이 나른한 봄기운이 두렵기 까지 하다. 이렇듯 우리를 절망과 비애로 몰아넣는 이 권태로운 봄날의 악마와도 같은 기운은 누구에게나 찾아든다. 마치 악몽과도 같이...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의 음악세계는 이러한 봄날의 악몽을 매우 환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오페라 ‘로엥그린(Lohengrin)’이다.

 

‘로엥그린’은 바그너가 작곡한 전 3막의 낭만적인 오페라로서 제3막 ‘전주곡’에 이어 나오는 합창은 독자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아는 ‘혼례의 합창’이다. 

 

지난 2008년 뉴욕필하모니오케스트라 평양공연(지휘, 로린 마젤)에서 첫 곡으로 연주되기도 했던 이곡은 오페라 ‘로엥그린’에서 두 주인공인 로엥그린과 엘자(Elsa)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연주된 합창곡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결혼은 비극적 종말을 맺게 된다.

 

어느 날 엘자의 가슴에 봄이 찾아왔다.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로엥그린과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 그 결혼에는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결혼 후 로엔그린과의 모종의 약속을 지키기로 한 맹세이다. 엘자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엘자는 결혼식에서 ‘혼례의 합창’이 울려퍼진 후 그 약속을 어기고 만다. 이로 인해 로엥그린은 엘자의 곁을 떠나고 엘자는 그 충격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엘자의 봄’은 ‘죽음의 봄’ 이었던 것이다. 이 ‘혼례의 합창’은 이런 비극적인 오페라에 삽입된 곡이다. 마치 화창한 봄날의 악몽과도 같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합창이 행복의 시작을 알리는 결혼식의 연주곡이 된 배경은 19세기 초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맏딸인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에서 평소 바그너의 열렬한 팬 이었던 공주가 자신이 입장 할 때 이곡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 후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많은 상류층 여성들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황실 결혼식을 따라하게 되면서 전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결혼식에 가보면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 연주되는 두 행진곡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곡은 상반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먼저, 신부 입장 때 연주되는 느리고 엄숙한 바그너의 ‘혼례의 합창’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과 죽음의 내용으로 끝나는 비극적인 곡인 반면, 신랑 신부가 퇴장할 때 연주되는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의 ‘결혼 행진곡’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극음악 ‘한여름밤의 꿈’ 제5막에 나오는 합창곡으로 웅장하고 경쾌한 팡파레가 울려 나오는 밝고 희망찬 곡이다.

 

그동안 북핵 위협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가 작년 2월에 열렸던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동참함으로 정부와 많은 국민들은 봄이 올 것에 대한  열망의 소리가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은 올림픽 기간 중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 등 수백 명에 이르는 인원을 참가시켰고, 북한 최고위급 인물들이 특사단으로 대거 방남하여 민족의 평화를 주제로 대화하고 돌아갔으며, 곧이어 3월 5일에는 이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대북 특사단이 방북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환대를 받았다.

 

더욱이 4월 1일과 3일에는 우리 대중가수들로 구성한 160명 규모의 공연팀이 ‘봄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평양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왔으니 일부 국민이 한반도의 봄을 기대하는 것도 일견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대북특사단 방북 시 김정은의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직접적 언급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약속에 한껏 고무되어 귀국 즉시 백악관에 찾아가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이 약속을 전달함으로 결국 싱가포르에서의 6.12 미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우리는 (북미간) 중매를 서는 입장”이라고 했다. 아마도 청와대는 6.12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 혼인을 위한 상견례 쯤으로 여긴 것 같다. 혹시 우리 정부는 결혼 당사자인 본인을 중매자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올해 2월 27과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계절상으로는 봄이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지난지도 어언 한 달이 가까운 시기지만 한반도에 봄은 올해도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제2차 상견례가 결렬되므로 이 혼사는 결코 순탄치 못할 것을 예감케 했다.

 

봄이 온다. 그러나 한반도의 봄은 경제적 지원이나 유명 대중가수 몇 명이 평양에 가서 노래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비핵화의 약속을 지켜야 오는 것이다. 또한 봄이 오되 어떤 봄이 오느냐가 관건이다. 즉 ‘소생의 봄’이냐, ‘죽음의 봄’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능란한 중매 역할로 혹시 결혼식을 치른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북한이 비핵화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오페라 로엔그린의 엘자처럼 ‘죽음의 봄’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평양공연 시 수많은 작품 중에 굳이 바그너의 오페라 ‘로엥그린’의 ‘전주곡, 혼례의 합창’을 레퍼토리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부디 앞으로 다가올 한반도의 봄이 ‘엘자의 봄’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강  인

문화예술평론가

한국경제문화연구원 문화예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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