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통합적 동시대 현대미술과 전시공간

고은실 | 기사입력 2019/02/07 [11:16]

학제통합적 동시대 현대미술과 전시공간

고은실 | 입력 : 2019/02/07 [11:16]

▲ 고은실 선임연구원 

미술계는 현재 포스트-포스트 미술작업 시대(post-post studio age)에 들어섰다고들 말한다. 

 

지난 20년의 동시대 현대미술을 거치면서 미술의 학문 간 경계가 확장되고 전환되어 왔다. 작업 공간 스튜디오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사물, 환경, 컨텍스트를 만들어내는 활력의 장소다. 

 

예술가들의 작은 전시공간은 큰 디자인 사무실, 실험 공간, 워크샵, 아카이브(기록 보관소)와 도서관을 갖추었으며, 작업실은 레지던시처럼 기관의 사무실과 복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대미술 프로젝트들은 제작업자·건축가·아키비스트·미술사가·과학자·이론가·큐레이터들이 협업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흐름은 1960년대에 시작되어 1990년대 중반 미술계의 지적, 경제적 상황에서 효율성을 위해 더욱 권장되고 있다. 

 

디자인 갤러리와 미술관이 늘면서 많은 미술작가들과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미술계의 현실적 상황과 기회를 위해 학제통합적 작업공간(the transdisciplinary studio)모형을 요구받고 있다. 

 

각 분야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사물·설치·건물·공간을 포괄해서 볼 수밖에 없는 과잉생산의 결과이기도 하다. △관계적(relational) △참여적(participatory) △미술-건축 종합복합단지(art-architecture complex) △디자인아트(designart)와 같은 미술과 디자인의 용어들과 연관해 실행방식의 성격상 학제통합적 구조(the transdisciplinary structure)를 갖는다. 

 

작품을 처음 전시하는 곳은 작업실이고, 작품의 두 번째 전시는 갤러리인데, 그 갤러리의 작품이 컬렉터에게 판매되고 나면, 세 번째 전시로 다른 갤러리나 미술관, 뮤지엄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네 번째 장소는 저술·카탈로그·잡지로 옮겨간다. 

 

작가의 미술작업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디자이너·기술자·건축가·행정가·큐레이터·강연 관계자들 모두가 그 미술작품에 필요한 중요한 공동체 구성원이다. 작품이 차츰 누적되어 순환하면 처음 예술가가 작업실에서 작품을 전시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 

 

그들의 기술과 관계없이 작품은 상당히 다른 방식과 모습으로 나올 수 있는데, 작업 구조와 전시 방법에서 미술과 디자인은 종종 교차하며 합류해왔다. 따라서 이들에 의한 학제통합적 작업공간은 △미술 △디자인 △건축의 담론을 가로지르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유기체 혹은 미생물이라고 볼 수 있다.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는 1963년 쿠바 아바나에서 태어나 6세가 되던 해인 1969년 가족과 함께 미국 시카고로 이민해 정착했다. 시카고 일리노이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19세 때인 1984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아트센터 칼리지오브디자인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88년 졸업 후 개인전을 시작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첫 작품을 만들고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파르도는 뉴욕 맨하탄 웨스트 22번가, 첼시에 있는 9000평방피트의 디아아트센터갤러리(Dia Center for the Arts) 1층의 전체 공간을 새로운 서점, 전시실을 무대화하고 변형시켰다. 그곳에서 전시한 '프로젝트(Project)'(2000. 9. 13- 2001. 6. 17)는 △갤러리 △서점 △로비의 세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디아 빌딩의 로비를 재설계하고 로비를 밝게 착색한 타일로 덮었으며 새로운 서점을 만들었다. 재구성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입구를 독립시켜 따로 두고, 개방시간을 연장하는 등 재구성한 갤러리 전체가 그의 작품이었다. 그의 프로젝트는 △미술 △문화 △이론 △역사 △시 △비디오영상의 전자예술까지 혼성적이며 혼합적인 동시대 현대미술활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호르헤 파르도. (2000). '프로젝트(Project)' 3개 부분: 서점, 로비, 갤러리. 108 x 108 피트. 입구, 바닥, 서점에 밝은 타일 전경, 폭스바겐 뉴비틀 1995년형. 디아미술센터 소장. (출처=디아첼시갤러리미술센터)

 

파르도의 미술전시공간은 세 작업으로 구성됐다. 첫째, 디아아트센터의 로비를 재설계하고 둘째, 아트센터에서 실질적인 서점을 만들었으며 셋째, 고전적인 화이트큐브인 1층 갤러리에 전시를 기획했다. 

 

처음부터 이 세 가지 작업의 실행이 우열 없는 단일 독립체로 다루어졌다. 파르도는 주요 작업인 타일바닥이 자신의 개념을 통일시킨다고 결정하고, 프로젝트가 진행됨에 따라 합의된 프레임의 작업 틀 내에서 즉석에서 작업해나갔다. 

 

네 가지 크기와 여덟 색상으로 제작된 세라믹 타일은 순차로 배열된 고정된 패턴으로 배치되었고, 색상은 랜덤으로 선택되었다. 시야를 가로질러 눈을 사로잡는 색상으로 놓여진 사물들(책들, 방문객 의류, 가구)은 우연적이고 불협화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통합된 환경으로 인식됐다. 

 

광택 있는 타일 바닥 표면에 천장의 규칙적인 격자 조명장치의 빛이 비추어져 평행하고 넓고 환하게 빛나는 바닥을 만든다. 레몬, 감귤 색상의 역동적인 색상의 도자기 바닥타일 장식 패턴이 기둥으로 연결되어 바닥과 기둥, 도예와 디자인, 건축의 구분이나 경계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만들고, 유사한 색조로 인쇄한 커튼도 시각적으로 주변과 서로 연결된다. 

 

실내 장식품으로서 내부 가구들의 화려한 색조는 독서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마젠타 색 불빛과 함께 서점 관리자의 사무실도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일상적인 행위가 일어나는 서점이 화려한 타일로 마감되어 비현실적인 이미지의 건축을 만들어냈다. 

 

호르헤 파르도의 ‘프로젝트’작품에서, 건축과 디자인 접점의 동시대 현대미술은 심미와 실용주의, 이미지와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혼합체(hybrid)로서의 미술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현대미술전시 공간은 관람자가 느낄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서의 대화의 장으로 바뀌는 것이 마땅하다. 파르도는 인터뷰에서 ‘관람자들에게도 미술을 통하여 디자인의 장점인 심미(미적 감각)와 기능(유용성)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파르도는 사람들이 회화작품을 벽에 걸어놓고, 교환하기도 하고 재화처럼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예술은 당연히 기능적(functional)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주요 목적은 단지 유용성(utility)이 아니라  예술, 삶, 시각예술의 매체, 장르의 경계를 와해시키고 모호하게 하는 것이다. 

 

파르도 자신도 관람자들도 예술이 어디서 시작되고 마치며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파르도의 예술은 항상 실용주의에서 시작하며 사람들의 생각(공간, 미술작품, 예술이라고 믿는 것)을 와해시키고 작업공간(제작과정), 전시공간(장소, 매체, 용어)에서 미술공동체와의 협업을 통해 대화(dialogue)를 시도하고 그것을 주시하여 지켜본다. 

 

건축과 디자인, 그리고 삶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동시대 현대미술은 예술작품이라는 담론적 사물을 매개체로 끊임없이 새로운 반응과 질문을 일으켜 미술작품의 가변성(mutability)이 곧 관람자들에게 전이되게 한다. 

 

파르도는 미술작업을 통해 관람자에게 예술가의 안구(시선)를 빌려준다. 그의 예술작품이 창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모호함(ambiguity)’이다. 그 모호성은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시선을 배움으로써, 감상자들이 삶과 밀접한 미술의 특성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열린 개방성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고은실

서울대학교 창의예술과정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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