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인간 생명의 존엄성

손봉호 | 기사입력 2019/01/28 [09:20]

[손봉호의 시대읽기] 인간 생명의 존엄성

손봉호 | 입력 : 2019/01/28 [09:20]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최근에 개발된 유전자 검사로 2,500가지의 질병 전조를 알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500가지만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고칠 수 없는 질병 전조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당사자에게 알려야 하는지는 의료 윤리의 심각한 고민거리라 한다. 의학, 유전학, 생명공학이 발달함에 따라 매우 복잡한 윤리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생명과 관계된 윤리 문제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기본적인 것은, 왜 사람의 생명이 존엄한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확실히 제시하는 것이다. 이 근거가 흔들리면 생명 윤리의 모든 논의가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 

 

현대 사회에서는 살인이 더 많이, 더 다양한 방법으로 일어난다. 살상 무기와 흉기, 낙태 기술, 독약, 생화학 무기 등은 더 효과적이고 다양하게 개발되고, 안락사와 자살은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환경오염과 기상 변화로 생명을 잃고 빈부 격차로 인한 기근과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그 원인을 사람이 제공하고 있으니 이 역시 간접 살인이라 할 수 있다.

 

의술과 치료제가 발전하고, 인권 선언이 보편화되어 생명이 연장되고 생존권이 존중되는데도 사람에 의해 사람의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경우는 과거보다 더 늘고 있다.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신성하다는 믿음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살인이 왜 나쁜가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감각이 있는 생명, 즉 동물의 생명은 신비롭기에 존엄하다고 믿어 왔다. 오늘날에도 채식주의자들 대부분이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모든 다른 자연 현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생명 현상만은 그렇게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공적으로 생명체를 합성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상당한 위협을 느낀다.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유신론자들은 적어도 생명만은 창조주의 전유물이므로 사람이 설명하거나 조작할 수 없고, 특히 사람의 생명과 관계되는 경우에는 어떤 조작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화학적으로 생명을 합성하려는 노력을 그들은 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한다. 생명공학, 특히 인간의 생명 혹은 유전학 연구와 실험에 대해서 정부들이 어느 정도 제재를 가하는 것도 그런 관점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지금 많이 흔들리고 있다. 요즘처럼 생명과학이 계속 발전해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거나 생명공학이 발달해 생명을 합성하거나 조작할 수 있게 되면, 생명은 그 이상 존엄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생명 윤리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 현상이 신비롭다는 사실은 구태여 인간의 생명만 존엄하다고 주장할 수 없게 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처벌하면서도 동물을 도살하는 것은 처벌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단순히 개인 차원의 채식주의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비교적 간단하고 상식적인 입장은, 모든 인간은 죽기를 싫어하기에 다른 사람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공자의 가르침이나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등의 황금률을 적용하는 것이다.

 

사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것은 감각을 가진 모든 생물체의 가장 강력한 본능적 욕구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생명은 다른 모든 것을 향유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생명은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없고, 인간이 가진 모든 기능, 가능성, 향유하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그러므로 다른 무엇보다 생명은 귀중하고 따라서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돈을 ‘좋아한다’는 사실에서 모든 사람은 돈을 ‘좋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오류다. 모든 사람이 죽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에서 모든 사람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바로 그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오늘날 자살하거나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죽었을 때 그들을 비난할 윤리적 정당성이 없어진다. 사람들이 죽기를 싫어하기에 살인하는 것이 나쁘다는 주장은 살인을 억제하기 위한 교육적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가 약하다는 것은 생명 윤리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기본권과 더불어 생명 존중의 당위성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살인하지 말라”(출 20:13).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6). 이제까지 어떤 이론도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기본권을 이 명령만큼 확실하게 정당화하지 못했다.

 

생명 윤리의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근거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므로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무조건 사람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 생명을 보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러해야 하며 생명 경시를 조장하는 지금의 세속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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