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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그리스도의 마음과 소통

손봉호 | 기사입력 2019/01/07 [09:09]

[손봉호의 시대읽기] 그리스도의 마음과 소통

손봉호 | 입력 : 2019/01/07 [09:09]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최근 ‘소통’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어떤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그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것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문제가 생기니까 비로소 그것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도 있다. 요즘 ‘안전’이란 말이 많이 사용되는 것은 본래 안전이 중요함에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세월호 사고로 그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통’도 비슷하지 않나 한다. 소통은 항상 중요하지만, 그것이 잘 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요즘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한다. 

 

구태여 오늘날 소통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역설적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 사회에는 언론의 자유가 잘 보장되어 있다. 대통령에 대해서 육두문자로 욕을 하고 온갖 비열한 표현으로 댓글을 달아도 별로 제재를 받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통신 수단이 발달한 나라다. 신문과 잡지, 방송, 인터넷, 유무선 전화 등의 매체에 관한 한 우리를 따를 나라가 별로 없다. 글과 말도 쉬워졌다.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나 말은 사람들이 읽고 듣지 않으려 하므로 가능하면 쉽게 말하고 쉽게 쓰려고 안간힘을 쓴다. 말이 이렇게 많아진 적도 없고, 이렇게 쉽게 그리고 알기 쉽게 전달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다. 사실은 지금만 잘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별로 안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먹고 사는 문제, 민주화, 북한 위협 등 급한 불을 끄기에 급급했고 그 문제들만 해결되면 나머지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먹고 사는 문제와 민주화는 해결되었는데도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외롭고 갈등은 더 크며 단합이 잘 안 되어 공생이 위협을 받는다. 형식적 조건은 잘 갖추어졌는데도 소통이 잘 안 된다. 왜 그럴까? 

 

자명한 대답은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진심으로 이웃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거나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일도 드물다. 우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는 모두 철저히 자기중심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만 중요하고 잘났으며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손해 끼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인의 차세중심적 세계관에서는 이 세상이 전부며 출세해서 이름을 떨치는 것이 삶의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에 인간 상호 간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은 경쟁에서 이겨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자연조건이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주로 결정했기 때문에 사람과의 경쟁은 상대적으로 덜 치열했다.

 

적기에 내린 비와 풍부한 햇빛으로 풍년이 들어야 부자가 되었던 시대에는 다른 사람과 이해 문제로 겨룰 이유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거의 전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오늘날에는 인간관계가 결정적이 되었고 그것이 주로 이해관계의 성격을 띠게 되므로 경쟁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경쟁자 사이에는 전략적 교환만 있을 뿐 진정한 소통은 일어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외롭고 불행해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교회와 교단 사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하나님도 ‘내’가 잘 섬겨야 하고 복과 은혜도 ‘나’와 ‘우리 가족’이 받아야 하며 성장도 ‘우리 교회’만 해야 하고 심지어 선교, 구제, 전도도 ‘우리 교회’가 주도해야 한다. ‘이웃’의 축복, ‘이웃 교회’의 성장, ‘다른 교단’의 선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나 교단 간에도 경쟁은 있어도 소통은 없다. 이렇게 ‘우리 교회’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바울이 권고하는 대로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빌 2:3-4)야 가능하다. 바울은 그런 것이 자기를 낮추신 ‘그리스도의 마음’이고, 우리는 그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했다.

 

말을 많이 하고 대화 기술이 뛰어나야 소통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하고 양보하면서 다른 사람을 진실로 배려하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진정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것이 그런 소통이다. 그런 소통이 이웃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길 때보다 훨씬 더 큰 이익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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