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적끼적] 공감의 부재 속 ‘거리에 나온 의사들’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8/11/12 [16:12]

[끼적끼적] 공감의 부재 속 ‘거리에 나온 의사들’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8/11/12 [16:12]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대한의사협회에 소속된 의사 1만여명이 집회를 열었다. 의사들의 목소리는 뜨거웠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냉랭했다. 

 

이들은 최근 의료사고로 의사 3명이 법정구속된 것에 대해 항의하며 고의성이 없는 의료과실은 형사책임을 면제해주는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을 요구했다. 아울러 환자를 선별해 치료할 수 있도록 진료거부권을 달라는 요구도 내놓았다. 

 

의사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계기는 5년 전인 2013년 발생한 의료사고 때문이다. 

 

한 8살 어린이가 복부통증으로 경기도의 한 병원을 4차례에 걸쳐 방문했지만 병원은 ‘변비’로 진단했다. 이후 환자의 부모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야 횡격막탈장 및 혈흉 진단을 받았으며 저혈량 쇼크로 아이는 사망하고 말았다. 

 

재판부는 8살 아이의 X-ray 촬영 사진에 나타난 증상이 애매한 수준이 아닌 명백한 수준이었다며 업무상 과실로 의사 3명에 대한 법정구속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의료현장은 예기치 못한 불가항력적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다. 이것이 의료의 본질”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 의사협회에 소속된 의사들이 1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를 열고 의료사고 의사 구속에 대해 항의했다. 이들은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 및 진료거부권 등을 요구했다. (사진제공=대한의사협회)   

 

집회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은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은 “의사의 진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선한 의도가 전제돼 있으며 최선의 진료를 했음에도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우리는 의사로서 직무를 수행했다는 이유로 철창 속에 갖힌 죄인이 돼버렸다”고 언성을 높였다. 

 

최 회장은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도 “의사면허를 살인면허라고 표현한 것은 악의적인 명예훼손이다. 살인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는가. 살인 면허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의사에게 올 게 아니라 외국으로 나가 진료를 받으라”고 감정 섞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를 놓고 현재 환자단체에서는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들은 의료과실 인과관계의 입증이 어려워 의료분쟁에 있어 절대적 약자”라며 “고의가 아닌 과실의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하라는 의협의 주장에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 입장에서는 분노와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더욱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해 의사협회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의사에 대한 불체포 특권까지 용인해달라는 의사들의 요구는 비상식적이라는 것이 환자단체들의 입장이다. 

  

# 결국,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죽었다.  

 

우리 국민들은 모두 의사 앞에선 ‘환자’다. 부자든 거지든, 노인이든 아이든 환자의 자격으로 의사 앞에 선 이상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의사의 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을(乙)일 수밖에 없는 환자 입장에서는 내 몸에 어떤 이상이 있으며 어떤 시술이 행해지는지 알 길이 없다. 정보의 불균형에 따른 문제는 ‘의료사고’라는 불가항력적 상황 앞에서 더욱 가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많은 의료사고에서 환자가 승리한 경우는 드물었다. 의사가 마음을 담아 과실에 대해 사과하고 합당한 보상을 나서서 한 적은 거의 없었다. 환자가 혹은 유가족들이 대신 눈물로 얼룩진 힘겨운 싸움을 한 끝에야 비로소 소정의 보상이 이뤄지는 것이 드문드문 있었을 뿐.  

 

고의가 아닌 과실의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하라는 의협의 주장은 형사처벌을 일체 받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의료행위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말대로 라면 고의로 사람을 죽이는 의사는 없으니 모든 환자들의 사망은 과실이다. 때문에 의사라면 처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 국회의원 이상으로 강력한 불체포 특권이다. 

 

의사가 환자를 선택하겠다는 ‘진료거부권’ 역시 의사들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마저 사라지게 했다. 

 

“나는 환자를 위해 나의 의무를 다하는 데 있어 나이‧질병‧장애‧교리‧인종‧성별‧국적‧정당‧종족‧성적성향‧사회적 지위 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담겨있는 내용이다. 의료직에 입문하며 다음과 같이 서약한 이들은 무엇을 근거로 차별을 하고, 진료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 박영주 기자

 

#대한의사협회, 함무라비 법전 이전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약 3700년 전인 함무라비 법전엔 ‘의사가 사람에게 수술칼로 중한 사어를 만들어 사람을 죽게 했거나, 수술칼로 사람의 각막을 절개하여 사람의 눈을 못 쓰게 하였으면, 그의 손을 자른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해 의료사고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으며, 이에 대한 처벌도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환자를 선별해 치료할 수 있도록 진료거부권을 달라는 요구도 함께 내놓았다. 수술실 CCTV 설치도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의사협회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의사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가 아닌 사고로 환자가 사망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실제로 의료사건들을 나열해 보면 ▲고 신해철씨 의료사고 사망사건, ▲양천구 다나의원 집단 C형간염 사건, ▲의사 대신 간호조무사가 무려 800회가 넘게 수술한 병원, ▲부산의 모 정형외과에선 전문 의사가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수술을 집도하도록 해 환자를 뇌사상태에 빠트렸다.

 

더욱이 의료사고는 일반 사고와 달리 조사하는 것부터 난이도가 다르다. 병원 측이 이와 관련된 증거물을 인멸할 경우 의료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진실을 밝히긴 더욱 어렵다. 

 

대한의사협회는 스스로 본인들의 신뢰를 깎아먹는 행위를 하지 않길 바란다. 21세기에 사실상 함부라비 법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 임이랑 기자

 

# 의료사고 의사의 면죄부 위해 국민 생명 볼모로 삼겠다니

 

대한의사협회의 지난 주말 집회를 지켜본 시민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의료사고를 내 8살 초등학생 A군을 숨지게 한 의사들을 법원이 구속하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이에 반발해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것이다. 의협은 24시간 총파업을 벌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의사들의 파업은 불법이지만, 그 전례가 없지는 않다. 2000년 의약분업 도입, 2014년 영리병원 및 원격의료 도입 때 의협은 단체행동에 나섰다. 둘은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의협은 의약분업 도입 저지에는 실패했지만, 영리병원·원격의료를 막는 데에는 성공했다.

 

국민의 지지가 있었는지 여부는 의협의 단체행동 성패를 가르는 한 가지 요인이다. 구속된 의사들은 A군의 병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었던 X선 자료를 확인하지 않았다. 진료를 소홀히 했던 의사들에게까지 면죄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협을 어느 국민이 곱게 보겠나.

 

극단적이지만, 중대한 과실로 의료사고를 내고도 반성은커녕 버젓이 진료(라고 쓰고 영업이라고 읽는다)를 계속하는가 하면 환자의 신체를 조롱하는 의사도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환자에게 폭행당하며 힘겹게 일하는 의사들도 있다. 의협은 누구를 위해 행동해야 하는가/ 성상영 기자

 

문화저널21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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