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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돈이란 우상

문화저널21 | 기사입력 2018/11/05 [09:18]

[손봉호의 시대읽기] 돈이란 우상

문화저널21 | 입력 : 2018/11/05 [09:18]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이 세상에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잘못을 옳은 것으로, 천한 것을 고상하게, 늙은이를 젊은이로, 비겁한 자를 용사로”로 만드는 것이 있다 한다.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그의 희곡 《아테네의 타이몬》에서 타이몬의 입을 빌려 표현한 관찰이고, 마르크스가 그의 《국가경제와 철학》(Nationnalökonomie und Philosophie)엔서 긍정적으로 인용한 구절이다. 도무지 그런 무소불위의 능력을 갖춘 것이 무엇인가? 그게 바로 돈이다. 

 

셰익스피어 시대(17세기)와 마르크스 시대(19세기)에 돈이 그만한 힘을 행사했다면 오늘날엔 그보다 수십 배나 더 큰 힘을 행사할 것이다. 그때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었던 것을 지금은 살 수 있게 되었고 (건강, 미모, BMW), 그때는 돈벌이 수단이 아니었던 것이 오늘은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었으며 (야구, 개그, 얼굴), 과거에는 돈이 없어도 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돈이 없으면 어렵게 되었고 (국회의원, 학위), 과거에는 돈이 있어도 어려웠던 것이 지금은 돈이 있으면 쉬워졌다 (신분 상승, 총회장). 미국이고 한국이고 훌륭한 대통령은 경제를 살려야 하고, 대학에서는 돈 버는 데 도움이 되어야 인기 학과가 된다. 하늘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의와 사랑이고, 땅의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돈과 쾌락이다. 

 

사람이나 짐승은 힘이 있는 것을 의지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돈보다 더 강한 것이 없고 따라서 사람들은 돈을 의지하게 되었다. 이미 예수님 시대에도 돈이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 했던 것 같다. 예수님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돈이 우상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때 돈이 우상이 될 수 있었다면 오늘에는 그 가능성이 훨씬 더 커졌다. 문화가 세속화되어 초월적 세계와 가치는 무시되고 육체 중심의 물질주의가 지배적인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마치 칼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듯 돈도 그 자체가 악하거나 더러운 것은 아니다.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쓰는 돈은 매우 귀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 욕망이란 것이 있으므로 돈이 바르게 쓰일 가능성보다는 잘못 쓰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로크의 관찰대로 인간의 욕심이 아무리 크더라도 돈이 없었더라면 부를 무한히 축적할 가능성이 없었고 따라서 빈부 격차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며, 그 때문에 생겨난 온갖 문제들로 사회가 이렇게 갈등으로 가득 차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 했지만, 이제는 ‘돈 그 자체’가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있다. 

 

돈에는 힘이 있고 그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기에 돈은 부패의 뿌리로 작용하고 있다. “모든 힘은 타락할 경향이 있다”(All power tends to corrupt)란 액튼의 경고에서 돈은 예외가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전형적인 예가 되고 있다. 가난한 교회보다 큰 교회에 사고가 많은 것도 큰 교회에 돈이 많아서 부패의 유혹이 더 크기 때문이다. 가난했더라면 존경 받을 분들이 돈이 많아서 감옥에 앉아 있다.

 

성경에는 돈에 대한 경고가 매우 많고, 돈이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룟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았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돈 때문에 거짓말하다가 죽었으며, 시몬은 돈으로 성령을 사려다 베드로에게 혼쭐이 났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도 돈이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파는 것에 대한 항의에서 비롯되었고, 오늘날 한국 교회의 부패도 대부분 돈과 관계되어 일어난다.

 

특히 한국인의 전형적인 세계관이 차세 중심적이고 국민 상당수가 돈에 미쳐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는 이런 세계관을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에 깊이 함몰되어 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복 받는 것이고, 연보를 많이 해야 좋은 교인이며, 헌금이 많이 걷혀야 성공한 교회로 인정받는 상황이다. 한국 교회와 교인들의 상당수는 실제로는 돈을 섬기면서도 스스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줄 착각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섬기는 우상은 의심할 여지 없이 돈이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성경적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면 돈의 위험을 직시하고 돈을 본래 위치로 돌려보내야 한다. 돈에 대한 태도가 바로 신앙의 순수성을 시험해 보는 시금석이다. 돈을 상대화하려면 종교개혁 당시의 성도들처럼 ‘세계내적 금욕’(Weber)을 실천해야 한다. 열심히 일해서 이익을 많이 내되, 철저히 절제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기본 수요만 충족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나라에 주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재물은 우리의 편의와 쾌락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눅 12:42) 주라고 주신 것이다.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므로 우리 자신의 사치와 쾌락에 쓰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범죄일 수밖에 없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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