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사이버 공간과 신독(愼獨)

손봉호 | 기사입력 2018/09/04 [08:31]

[손봉호의 시대읽기] 사이버 공간과 신독(愼獨)

손봉호 | 입력 : 2018/09/04 [08:31]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인터넷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 우리는 앞으로 의사소통이 더 원활해지고 건전한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 낙관했다. 가끔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의견이 사이버 공간에 제시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수정하고 비판할 것이므로 가장 정확하고 공정한 의견이 다수의 인정을 받아 정착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위키피디아 (Wikipedia)가 상당한 인기와 신임을 받는 것을 보면 그 논리가 옳은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위키피디아는 주로 학술적인 이론과 사실을 중심으로 운영되므로 일반적인 여론 형성의 전형이 될 수 없다.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온갖 의견들이 우후죽순처럼 사이버 공간에 올라오자 처음의 기대는 대부분 무너졌다. 인터넷 여론은 방송과 신문보다 더 불신을 받게 되어 건전한 여론은 기대했던 만큼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댓글 문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편향된 생각들과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거침없이 노출되고 심지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그대로 올라온다. 편견을 양산해 혼란을 일으키고 개인의 인격을 모독해 심지어 사람들을 자살에 이르게까지 한다.

 

다른 나라의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나라의 댓글같이 저급하고 감정적인 말들이 거침없이 게시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심지어 기독교 온라인 공간에도 그런 댓글이 없지 않고, 다른 이용자들도 그런 것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너무 흔하기 때문일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정보와 감정만 상하게 하는 댓글은 사이버 공간에 제시되는 모든 정보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인터넷 여론은 조만간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 한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간단한 질문을 하나 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즉 심한 욕설과 야비한 내용의 댓글을 올린 사람에게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할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악성 댓글 내용을 그대로 내뱉지는 않을 것이다. 사이버 공간의 여론이 무책임하고 저질인 것은, 그것들이 대부분 사적인 공간에서 익명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비록 자기 이름을 밝힌다 하더라도 유명인이 아니고 자신을 아는 사람이 그 글을 읽을 확률이 낮으면 익명이나 다름없다. 

 

모든 사회, 특히 한국 사회에는 체면과 위신, 눈치 같은 것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불가결하다. 비록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요소가 없지 않지만, 체면이나 위신 같은 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전혀 살피지 않은 채 사람들이 모두 자기 마음에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사회는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 사이버 공간이 이 모양이 된 것은, 거기서는 다른 사람의 눈치나 체면 같은 것을 무시해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수양은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할 수 있다. 혼자 있을 때의 생각과 행동이 그 사람의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동양 전통에는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는 의미의 ‘신독’(愼獨)이란 것이 있다. “홀로 서 있어도 자기 그림자에게 부끄러움이 없고, 홀로 잘 때도 자기 이불에게 부끄러움이 없다”(獨立不慙影 獨寢不愧衾)는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진정한 신독이 가능할까? 그것은 우리가 추구할 이상일 뿐 피와 살을 가진 보통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란 사실이 진정한 신독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가 법률의 제재가 없이도 어느 정도 정직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며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른 인격체의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혼자서라도 올바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이 또한 다른 인격체들의 감시와 견제를 상상하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홀로 있을 때도 하나님 면전에(Coram Deo) 서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엄격한 의미에서 사적인 공간이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고 체면이나 위신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라도 악한 생각을 하고 못된 행동을 할 수 없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사이버 공간에서 무책임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저질 댓글을 올릴 수 없다. 

 

한국의 사이버 공간이 건전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한국 문화의 무신론적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 마음속의 경찰(police within)을 인정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혼자 있을 때 사적 공간이 철저하게 보장된다. 거기서는 진정한 신독이 이뤄지기 어렵고 무책임한 의견을 공적 공간에 제시하기가 쉽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사이버 공간을 지혜롭게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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