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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상대주의가 아닌 다원주의

손봉호 | 기사입력 2018/08/20 [14:04]

[손봉호의 시대읽기] 상대주의가 아닌 다원주의

손봉호 | 입력 : 2018/08/20 [14:04]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다원주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제기되는 가장 심각한 문제들 중 하나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고,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뿐이며,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가르치는 정통 기독교가 어떻게 진리, 가치, 구원, 원칙 등이 원칙적으로 다원적이라고 주장하는 세상과 공존할 수 있겠는가? 그 중에서도 구원의 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는 가장 직접적이고 뼈에 닿는 도전일 수밖에 없다. 

 

고대 사회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영원불변의 본질(essence), 실체(substance), 원리 같은 것으로 설명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그림자며 표피적인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양하고 무질서하게 변하는 것 같이 보여도 그 배후 혹은 그 뿌리에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본질과 실체가 있고 그것들은 불변의 원칙에 따라서 생성되고 변화한다고 믿었다. 그런 유산은 지금도 자연과학에서 그대로 남아 있다.

 

눈에 보이는 강물, 얼음, 구름은 현상일 뿐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H₂O, 나아가서 수소(H)와 산소(O)가 그 실체며, 그것은 섭씨 0도에 고체가 되고 100도에 기체가 된다는 법칙은 불변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19세기부터는 사회 현상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고 이런 시도는 실증주의(positivism)란 이름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서양에서는 17세기부터 인류 문화가 발전한다는 미래 지향적 역사관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모든 문화는 동일 선상에서 발전하지만 그 선봉에 서양 문화가 서 있다고 믿었다. 이런 서양 문화 우월주의는 20세기 초까지 건재했고, 서양의 식민지였거나 서양의 우수한 과학 문명에 큰 인상을 받은 비(非)서양 문화들도 대부분 그 우월성을 그대로 수용했다. 아직도 자주 사용되는 ‘선진국’, ‘후진국’이란 표현에서 그 유산을 볼 수 있다. 그때까지는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은 허용되었지만, 문화상대주의는 생소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주로 문화인류학에서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이 주장되기 시작했다. 독일 태생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보아스가 캐나다의 이누이트 족 문화를 연구한 뒤 “이누이트 문화는 서양 문화에 뒤떨어진 문화가 아니라 서양 문화와 다른 문화”라고 주장하여 서양 문화 우월주의나 문화가 단일선상에서 발전한다는 사상을 크게 흔들었다.

 

1948년 국제연합(UN)이 〈보편인권선언〉을 준비하고 있을 때 문화다원주의 대변자 헬스코비치(M. J. Herskovits)가 회장이었던 미국문화인류학회가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은 유명하다. ‘인권’의 이해는 문화마다 다른데 국제연합이 ‘보편’을 논의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북한이나 중국이 환영할 만한 비판이다. 비록 국제연합은 그 항의를 수용하지 않았지만, 문화다원주의는 오늘날 전 세계에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말았다. 

 

모든 문화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 종교인만큼 문화다원주의는 불가피하게 종교다원주의를 함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독교 신학자들 중에서도 종교다원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힉스(John Hicks), 맥커리(John Macquarrie)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구원이란 정점으로 올라가는 길은 기독교, 불교, 이슬람 등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문화다원주의를 부인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문화는 우월하고 어떤 문화는 저열하다고 판단할 보편적인 기준은 없다. 모든 문화에는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문화의 어떤 요소는 잘못되었고 어떤 요소는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상부상조 제도는 칭찬할 수 있고 인도의 과부 화장제도나 중부 아프리카 여자 할례제도는 그것이 그들 문화에서 아무리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우리는 강력하게 비판해야 한다. 한 문화 전체의 우열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한 문화가 가진 어떤 특정 요소를 칭찬하거나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상대주의는 인정하되 도덕적 상대주의는 수용할 수 없다.  

 

그리고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본질에 어긋난다. 본질상 모든 종교의 신자는 자기 종교의 우월성과 절대성을 믿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다른 종교 신자도 그렇게 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예의로 간주해야 한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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