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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역사의 무게

손봉호 | 기사입력 2018/08/06 [10:26]

[손봉호의 시대읽기] 역사의 무게

손봉호 | 입력 : 2018/08/06 [10:26]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어떤 이단의 미혹에 깊이 빠진 젊은이가 자기들 교주의 강연회에 나를 초청했다. 어이가 없어서 심히 꾸짖었다.

 

“기독교의 정통 교리는 2,000년 동안의 역사가 있어. 자네의 교주보다 몇 백 배 더 총명하고 신실한 수많은 학자와 경건한 지도자들이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자네의 교주보다 더 많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결의하고, 개정해서 형성해 놓은 결정체야. 어디 무식한 돌팔이가 하나 갑자기 나타나서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산에 감히 도전하면서 말도 안 되는 짓거리로 사람들을 속이려 하는가!”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종교이므로 역사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하나님의 뜻이 시간의 흐름이나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돌팔이가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계시 자체가 하늘에서 바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역사적 상황을 이용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구약성경 상당 부분이 역사 기록이고 신약성경도 마찬가지다. 불경이나 코란을 비롯한 다른 종교의 경전들도 성경만큼 역사적 기록을 많이 포함한 것은 없다.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이고, 모든 종교 가운데 역사를 가장 중요시하는 종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은 역사를 중요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 사건, 광야의 시련, 아브라함 등을 비롯한 조상들과의 언약, 이스라엘의 타락 등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라”, “잊지 말라”고 거듭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선민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기독교는 역사를 떠나서 정체성을 논할 수 없다. 물론 정경이 완성된 이후의 역사가 성경이 기록한 역사와 동일한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다고 가르치므로 우리는 역사적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닐지라도 올바로 이해한 역사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된다.

 

신학은 자연의 계시를 인정한다. 물론 성경의 계시와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이해한 자연현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준다. 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역사 자체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질 수는 없지만, 성경의 조명을 받은 역사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려 줄 수 있다.

 

네덜란드의 조직신학 교수 벨코프(H. Berkhoff)는 5세기경에 형성된 지금 형식의 사도신경에 그 시대의 교회에서 매우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주장들과 사조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거기에는 분명히 성령이 역사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그 시대에는 이미 미사가 예배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으며, 도덕적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도덕주의(moralism)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도 사도신경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고, 오직 정경, 특히 바울의 가르침이 순수하게 반영되었다는 사실은 기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천주교와 개신교의 모든 교파가 다 인정하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고백이 오직 성경의 가르침만 반영할 뿐 시대의 잘못된 생각과 제도를 배제한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2세기부터 5세기까지 무려 300년이란 긴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신학자의 연구와 공회의 토론을 거쳐 형성되었음에도 사도신경이 정경을 대체하지 않고 지금까지 성경의 권위 아래 남아 있는 것도 인간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벨코프는 지적한다.

 

이렇게 형성된 기독교의 정통성은 권위를 갖게 되었고 그에 대한 반복된 도전들을 굳건히 견뎠기에 역사의 무게는 더 커졌다. 그 역사의 무게를 무시할 수 없기에 기독교는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결코 개혁되어서는 안 되는가? 물론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란 표현은 17세기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 유래했고,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프랑스 개혁교회가 모토로 사용했다 한다. 개신교회의 생명은 끊임없는 개혁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렇다면 보수와 개혁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기독교의 개혁은 과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과거를 고치는 것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고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자연현상도 계시가 될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할 때만 권위가 있듯, 역사도 오직 성경에 의해 올바로 조명될 때만 진정한 무게를 가질 수 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올바로 반영된 것만이 진정한 권위를 가진다. 사도신경도 역사적 산물이고, 십자군 전쟁도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성경의 잣대로 재어 보면 하나는 옳고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역사는 인간의 산물이기에 역사를 비판적으로 돌아봄으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고 인간의 약점을 알아 대비할 수 있다. 과거를 바로 보아야 미래를 바로 살 수 있다. 독일이 존경을 받고 일본이 비판을 받는 것은 역사를 보는 능력과 태도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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