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경쟁심과 연합

손봉호 | 기사입력 2018/07/09 [09:12]

[손봉호의 시대읽기] 경쟁심과 연합

손봉호 | 입력 : 2018/07/09 [09:12]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매우 우수하나 모래알 같아서 단결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신화이므로 심각하게 취급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도산 안창호는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것은 우리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고, 힘이 없는 것은 단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지금의 한국 사회, 한국 정치, 국내외의 한국 교회, 해외에 있는 한인회, 시민단체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가를 보면 한국인이 단결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정확한 것 같다. 이런 분열 때문에 우리는 불필요한 손해를 엄청나게 많이 당하고 있고, 조선시대 말기와 같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손해를 보고 위기에 이르면서도 단결하지 못하는가?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서로 이기려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경쟁적이지만 한국인의 경쟁심은 좀 유별나다. 계속 적자를 보던 공기업도 민영화하여 경쟁에 붙이면 당장 흑자를 낸다. 학부모들도 자녀들이 학교에서 단순히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는 다른 학생들을 앞지르는 것을 더 원한다. 이런 학부모는 세계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경쟁심은 한국인을 부지런하게 만들고 한국의 발전을 빠르게 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이런 엄청난 경쟁심의 산물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빨리 절대빈곤으로부터 탈출했고, 민주화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이룩했으며, 한국 교회도 선교 역사상 가장 빨리 성장했다. 

 

이런 경쟁심은 역시 차세 중심적 세계관 때문이다. 효경(孝經)은 유명해져서 부모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 (立身揚名)이 효도의 극치라 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드리고 봉양을 하는 것보다 출세해서 유명해지는 것을 더 바란다.

 

물론 한국 사회도 다른 사회들처럼 유무상통의 가족 중심 공동체에서 이익 극대화를 노리는 개인들이 계약을 맺고 경쟁하는 시민사회 형태로 발전했다. 헤겔이 말한 대로 가족 공동체에서 시민사회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익을 위한 개인들의 경쟁은 유난히도 치열한 데 비해 경쟁을 조절하는 계약, 즉 경쟁의 규칙(rule of game)은 공정하지도 않고 충분히 존중되지도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시민사회는 중병을 앓고 있다. 사회가 사분오열되고 갈등이 심각하며 빈부 격차가 엄청나다.

 

가족 중심의 전통사회가 보장해 주던 안전은 약해지고, 사회 계약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불안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 수준이다. 한국적 세계관으로는 개인주의가 개인들을 결코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 같다. 개인의 이익 극대화를 노리는 개인주의가 개인 이익의 극대화를 허용하지 않고, 서로를 행복하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이런 개인주의는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하여 옛날의 부족, 씨족, 혹은 가족 사회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자유와 독립을 한 번 맛본 개인들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유기적 공동체에 함몰되어 개인적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독립된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한국적 개인주의의 약점을 극복한 진전된 공동체를 이룩해야 제대로 된 연합과 행복이 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민주적으로 제정된 법과 규칙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준수해야 한다. 잘못된 법은 민주적으로 고쳐야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기면 독재가 된다. 무질서가 지배하면 약육강식의 상태가 되고 약자들만 희생된다. 교통규칙이 지켜져야 보행자나 자전거가 큰길을 다닐 수 있고, 뇌물을 금지해야 가난한 사람의 권리가 존중된다. 뇌물은 “가난한 자의 돈이 부자에게 직행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끼리끼리 도와주고 서로 눈감아 주는 과거의 단합이 아니라 약속과 규칙에 따라 경쟁하는 정의로운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연합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자신의 이익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이익을 존중하고 자신의 잘못과 무관하게 불리한 상황에 부닥쳐 약자가 된 사람들을 보호해 줄 때 이룩된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소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연합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성경적 세계관에 따라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 나도 행복하며 서로를 위하여 나의 이익을 상대화할 때 비로소 나의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다. 진정한 연합은 예수님을 닮아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조금씩 양보할 때만 가능하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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