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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법 없이도 사는 사람

손봉호 | 기사입력 2018/06/25 [09:12]

[손봉호의 시대읽기] 법 없이도 사는 사람

손봉호 | 입력 : 2018/06/25 [09:12]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법 없어도 살 사람”이란 말이 있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법이 요구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칭찬이다. 이 말은 법으로 강제해야 비로소 행동하는 것은 그렇게 훌륭한 것이 아니란 뜻을 함축하고, 나아가서 법이란 그렇게 긍정적인 것이 아니란 것을 암시한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자율성에 있다는 것이 서양 인본주의의 기본 사상이다. 짐승은 본능, 충동, 공포 등에 의해 행동하므로 타율적이고,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거나 무식한 사람도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감정적인 것은 모두 수동적이므로 타율적이란 생각이 서양사상에 스며들어 있고, 그 유산은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다.

 

어떤 감정이나 외부의 압력 없이 오직 이성의 자유로운 판단과 선택에 따라 행동해야 자율적이란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도 모든 인간과 사회가 완전히 자율적으로 되는 것이고, 자율성의 정도가 곧 발전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충분히 성숙한 인간은 법의 강제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옳다고 판단해서 행동하는 사람이고, 그런 것이 가능한 사회는 발전된 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 형태로든지 법이나 강제력을 가진 규정이 전혀 없는 사회는 이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홉스에 의하면 그런 것이 없는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 (Homo homini lupus) 가 되고 “만인이 만인과 전쟁” (bellum omnium contra omnes을 일으킨다. 개인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다른 인간이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되면 약육강식의 상태가 벌어져서 인류의 존속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법이 필요하고, 그 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서양의 인본주의나 홉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법은 인간의 죄악 때문에 필요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모두가 선한 마음으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법을 없애도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착해도 질서를 위한 규칙은 불가피하다. 사거리에서 모든 운전자가 서로 양보하면 교통이 마비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사회에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법률이 더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자연이 아니라 점점 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뤄지고 있고, 그 관계는 점점 더 이해관계, 즉 경쟁적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어떤 사회도 종교, 전통, 예의, 윤리 같은 것만으로는 질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법이 늘어날 뿐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경찰, 검찰, 판사, 변호사도 늘어나며 그들의 역할과 힘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법이 많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법 없어도 사는 사람”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방인에게도 있는 양심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는 것(롬 2:14)으로 이해했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자율성’을 뜻한다. 현대 사회에는 이런 양심이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타율적이 되고 있다.

 

대법원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인과 비교하면 4배나 소송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의 모든 소송이 3심까지 가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법원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대법원이 되었다. 억울한 사람이 그만큼 많고 “법 없어도 사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

 

최근 한국 교회에서도 법이 중요시 되고 있다. 분쟁이 일어나 소송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교단 재판부도 자주 모이며 개교회가 정관을 제정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과거 교회가 순수하고 순결했을 때는 거의 없었던 현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회와 교계에 사람들이 탐하는 세속적인 이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교회가 물량적으로 커지자 돈, 명예, 지위, 권력 같은 하급가치가 생겨나서 그런 것을 탐하는 불순분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거나 교인들이 유혹을 받아 타락하기 때문이다. 과거 그리스도인이 핍박 받는 소수였고 교회가 가난했을 때는 그런 세속적인 가치를 탐하는 자들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런 것 때문에 다툴 이유가 없었다. 소송이 늘어나고 교회 정관이 제정되는 것은 한국 교회가 타락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방증이다.

 

바람직한 것은 법이 없거나 아주 적어도 질서가 잘 유지되는 것이다. 사실 법이 존재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법이 없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경찰, 검찰, 법원 등과 함께 법도 자살 지향적이다. 즉 스스로가 없어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법은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법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개인의 습관과 사회의 관습으로 정착되면 법은 강제적이 될 이유가 없어지고 법 자체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기 위함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기 위함(마 5:17)이라 했다. 바울 사도는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고 했다. 법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서로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사랑을 실천하도록 성화된다면 개교회가 별도의 정관을 만들거나 법정에 소송을 제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다수가 “법 없어도 사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나라에도 법률의 수와 소송이 줄어들 것이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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