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과도기의 서러운 시대

손봉호 | 기사입력 2018/05/21 [08:49]

[손봉호의 시대읽기] 과도기의 서러운 시대

손봉호 | 입력 : 2018/05/21 [08:49]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나는 주민등록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다르다. 1년의 차이가 있다. 내가 태어날 때는 신생아가 1년 이내에 죽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한 돌이 되기 전에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다.

 

돌잔치를 성대히 하는 풍속이 생긴 것은 삶의 첫해를 넘기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겨우 살아남은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칡뿌리를 캐 먹었다. 6.25 전쟁 때는 많이 죽고 다쳤다. 미군이 던져 주는 초콜릿을 주워 먹는 것을 행운으로 알았고, 외국인이 입다 버린 구호물자로 추위를 견뎠다.

 

독재 치하에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았다. 가족들 먹여 살리고 자식들 공부시키기 위하여 그야말로 피와 땀을 흘렸고 외국에 나가서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 겪는 온갖 천대와 수모를 다 감수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도기 세대의 서러움을 당하고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들에게 순종한 마지막 세대, 자식에게 효도 못 받고 어른 대접 못 받는 첫 세대,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 자식과 같이 사는 것이 쑥스러운 첫 세대, 어른의 말을 경청한 마지막 세대, 자신들의 말이 콧방귀로 들리는 첫 세대가 되었다. 가족을 위해, 자식과 나라를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가족들에게 소외되고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서러운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자립하려니 늙었다고 일자리를 주지 않고, 자식도 국가도 돌봐 주지 않으니 자살하는 것이 유일한 출구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만 명당 81.4명이 자살해서 일본의 17.9명, 미국의 14.1명의 거의 5배에 달한다. 국가는 부양할 자식이 있다고 외면하고, 자식은 자기 자식 사교육비 지출로 여력이 없다. 노인들은 배와 선창 사이에 빠져 버렸다. 오늘의 한국인은 구약시대의 고아와 과부 같은 처지에 있다. 

 

교회도 노인들에겐 관심이 별로 없다. 돈이 없으니 헌금도 많이 못 하고, 힘이 없으니 봉사도 못 하고, 케케묵은 생각에 발언권도 없어 정중하게 무시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래서는 안 된다. 일할 수 없는 장애인을 국가가 보호하듯 자기 힘으로 살 수 없는 노인들을 사회가 보호하는 것이 공정하다. 부잣집 아이들은 비싼 유기농 식품으로 공짜 점심을 먹이면서 힘없는 노인들은 자살하든 말든 내버려 두는 것이 정의일 수 없다. 모든 노인을 다 우대할 필요도 없다. 돈 있는 노인들은 지하철 요금도 물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노인들만 더 도우면 된다. 일할 수 있는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정년을 연장해 줘야 한다. 고속도로의 하이패스를 없애고 일본처럼 노인들이 통행료를 받도록 하면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효율성도 좋지만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 복지비용도 줄일 수 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영원히 늙지 않을 것이라 착각한다. 우리도 젊을 때는 그랬는데 당해 보니 착각이더라. 노후대책이란 노인들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세워야 한다. 돈만으로 되지 않는다. 노인 보호 정책, 노인 존중 문화가 중요한 노후대책이다. 당신들이 늙었을 때 지금의 노인 신세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푸대접한 사람은 푸대접받기에 십상이다. 

 

노인들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제 “밤 놔라, 대추 놔라” 지시할 시간은 지나갔다. 어차피 노인들이 책임질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 그들 뜻대로 되어서도 안 된다. 다만 반세기가 넘도록 시행착오를 거쳐 쌓은 경험과 삶의 지혜를 그대로 사장해 버리는 것은 너무 아깝다. 기회가 있으면 그것을 활용해서 새 세대를 도와야 한다. “이렇게 해 보니 좋더라, 저렇게 해 보니 나쁘더라.” 젊은 세대에게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것은 중요하다.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공연히 지하철 타고 돌아다니며 철도공사 적자만 늘일 것이 아니라, 노인정에 모여 앉아 바둑이나 둘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길가의 쓰레기도 줍고, 담배 피우는 학생들, 남이 보는 데서 서로 끌어안고 입 맞추는 젊은것들, 담배꽁초 버리는 철없는 철부지들을 꾸짖고 나무라야 한다.

 

혼자 하면 못된 놈들에게 폭행당할 수도 있으므로 몇 노인이 무리를 지어 잔소리 부대를 조직하는 것이 좋다. 어쨌든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젊은 세대에 짐이 안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그러나 자살은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없다. 생명 경시 풍조를 강화해서 사회를 돕기보다는 해를 끼친다. 

 

곱게 늙자.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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