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Media is ‘Message’

손봉호 | 기사입력 2018/05/08 [13:28]

[손봉호의 시대읽기] Media is ‘Message’

손봉호 | 입력 : 2018/05/08 [13:28]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인간의 의식을 물웅덩이에 비유했다. 깨끗한 물이 계속 들어가면 웅덩이가 깨끗해지고, 더러운 물이 많이 들어가면 웅덩이 전체가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즉 의식의 내용과 성격은 전달되는 정보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사람에게는 취사선택의 자유와 능력이 있어서 들어오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버릴 수 있으며,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취사선택도 이미 그 이전에 받아들인 정보에 상당할 정도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위의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흰 눈이 온 누리를 채워도 홀로 푸르게 남으리라” (白雪이 滿乾坤할 제 獨也靑靑하리라)고 성삼문이 결심했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한국 사회에 살면 한국어를 하고 김치를 좋아하게 되며, 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낮으면 개인도 쉽게 비도덕적이 된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녀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옛날에는 사람들이 대개 사람들의 말을 직접 듣거나 사실을 직접 목격함으로 정보를 얻었고, 그에 관한 판단이나 평가도 옳든 그르든 자신이 직접 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를 직접 얻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고 대부분 신문이나 방송, 책 등 매체(미디어)를 통해서 얻는다. 그동안 미디어의 종류와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고 다양한 정보를 더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의식 대부분은 매체들이 제공하는 정보로 채워져 있다. 사람들의 의식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사회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 의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체는 오늘날 우리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매체들 중에서도 인쇄 매체와 달리 방송, 영화, 휴대전화 등 전자매체는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반추하거나 비판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용자는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매체는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거기다가 미디어 전문가 맥루한(Marshall MacLuhan)이 지적한 것처럼 영상 매체는 말이나 글처럼 정보를 시간적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linear)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보여 주기 때문에(configuration) 우리를 훨씬 더 수동적이 되게 하고, 따라서 우리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비판적 사고는커녕 사고활동이 전혀 없어도 되도록 우리 두뇌를 게으르게 만든다. 신문이나 라디오 광고보다 TV 광고비가 월등하게 비싼 것은 광고효과가 그만큼 더 크기 때문이다. 더 효과적이란 것은 우리가 그만큼 더 수동적이고 그만큼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매체는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공정해서 소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정한 매체라도 운영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비용이 필요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재투자를 해야 하므로 영업이익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의 질과 전달 방식에 경제 논리가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정보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흠을 낸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중립적인 ‘매체’가 아니라 자체의 의도도 같이 전달하는 또 하나의 ‘정보’가 되는 것이다. “매체가 정보다”(Medium is the Message)라는 맥루한 (M. MacLuhan)의 말에 일리가 있다. 

 

선진 사회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사실과 객관성에 대한 열정이 낮은 후진 사회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하며, 객관성과 공정성에 취약한 한국 매체들의 경우에는 더할 나위가 없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소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가 아니라 그들이 좋아하는 정보를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제공함으로 광고 수입을 늘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재미만 추구하는 소모적인 오락 프로는 황금시간대에 방송하고 모든 국민과 특히 청소년들이 꼭 시청해야 할 좋은 교양 프로는 한밤중에 방송한다. 

 

정보 소비자들의 질이 낮으면 질이 낮은 정보가 더 많아지고, 질이 낮은 정보는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을 더욱 저급하게 만들어서 악순환을 일으킨다. 그 결과, 방송의 질이 낮으면 낮을수록 시청률은 높아진다. 그동안 우리 언론은 연예인들과 운동선수 꽁무니 따라다니느라 사회의 불법과 부조리를 지적하고 바로잡음으로 생명 존중이나 도덕성을 함양하는 것에 게을리 했다. 세월호 참사에는 한국 언론 매체도 정치권 못지않게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상황은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심각한 경종이 되어야 한다. 바울도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지적했다(롬 10:17). 물론 성령의 역사와 창조적인 사고, 우리의 자유로운 판단도 중요하고 그동안 형성한 비판 능력도 작용을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믿음과 가치관, 판단과 결정, 행동방식은 상당할 정도로 정보의 영향을 받는다.

 

더러운 물이 계속 들어오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더럽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점차 홍수처럼 밀려드는 더러운 물을 오히려 환영하게 된다. 교회의 설교나 교제하는 성도들의 의식 수준이 낮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매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기독교계가 진지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매체에 대한 변별력을 키워야 한다. 

 

나아가서 교계에는 건전한 기독교 매체들이 많아져야 한다. 가능한 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철저히 공정하되 성경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평가해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매체가 많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매체를 많이 이용해야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 판단이 건전해지고 행동이 신실해질 것이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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