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없다고 ‘태움’ 없나요…경찰 내사종결에 우는 간호사들

경찰, 서울아산병원 故박선욱 간호사 태움 논란 무혐의 내사종결해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8/03/25 [10:45]

증거없다고 ‘태움’ 없나요…경찰 내사종결에 우는 간호사들

경찰, 서울아산병원 故박선욱 간호사 태움 논란 무혐의 내사종결해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8/03/25 [10:45]

공기와 같이 분명히 존재하는 태움문화…간호사들 “나도 너였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태움’의 대물림, 살인적 병원시스템이 범인

제대로 사과도 안한 서울아산병원, 병원 말만 듣고 무혐의 내사종결한 경찰

 

‘태움’은 공기와 같다. 눈에 보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간호사들의 주변에 분명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간호사들을 옥죈다. 

 

그럼에도 경찰은 지난 1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다 자살을 택한 故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에 대해 “폭행‧모욕‧가혹행위 등과 관련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혐의 내사종결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유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이뤄진 결정이었다.  

 

‘태움’이 한 사람을 죽음까지 몰고 갔지만,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재 유가족들은 서울아산병원으로부터 어떠한 사과의 말도 듣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진상조사와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 24일 오후6시 서울성모병원 성내천 뚝방길에서 간호사연대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가 ‘故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현수막 뒤로 서울아산병원의 모습이 보인다.     © 박영주 기자

 

24일 오후6시 간호사연대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故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를 열기 위해 서울아산병원 성내천 뚝방길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전현직 간호사들과 시민들도 함께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지난 19일 경찰이 내린 내사종결 처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간호사 연대는 경찰을 향해 “태움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나. 어디서 태움의 증거를 찾으려고 했나”라고 반문하며 “태움은 다른 말로 학대다. 파괴적인 감정과 방임, 그에 상응하는 모든 괴롭힘은 흔적을 안 남기고 피해자의 영혼을 태워 한줌의 재로 만든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어 “유가족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마치 유가족의 동의를 받은 것처럼 수사를 종결했다. 유가족들은 경찰조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전하기도 했다. 

 

간호사 연대는 “병원도 사람을 태운다. 간호사 1명이 감당못할 업무를 맡기는 병원시스템도 문제”라며 “간호사를 원료로 사용해서 소진되면 폐기하는 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병원들이 간호사를 사용해온 양상이다. 해결책이라고는 간호대 정원을 늘려서 밑빠진 독을 채우려는 방식만 반복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서울아산병원과 경찰과 법에 묻는다. 태움은 정말로 없었나”라고 물으며 “생명을 무시하면 나의 생명도 그렇게 된다. 서울아산병원은 회피하지 말고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경찰도 재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 간호사들이 자기가 힘들었던 경험을 써붙인 포스트잇들.  © 박영주 기자

 

“간호사들은 왜 아픔만 공유해야 하나…간호사협회도 제대로 목소리 내야”

정부, 故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에도 형식적 가이드라인만…인력기준 필요

생명 살리는 간호사들의 울음섞인 외침 “나는 너다. 우리는 살고 싶다”

 

집회에서는 전‧현직 간호사들의 양심선언도 이어졌다.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태움의 피해자였으며 가해자였고, 모두가 살인적인 대한민국 병원 시스템의 피해자들이었다. 

 

현재 계약직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A선생님은 “태움은 단순히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언어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환자를 간호사에게 맡기는 행위, 간호사의 실수가 다른 이에게 전가됐을 때 지켜보며 도와주지 않는 간접적인 방임까지 모두 해당된다”고 말했다. 

 

A선생님은 “제가 간호사로 일할 때, 새로 신규 간호사가 입사했다. 당시 저는 그 친구의 등장이 반갑지 않았다. 제 앞가림도 힘든 상황에서 그 친구까지 챙기기 힘들었던 나는 친근감을 느끼며 다가와 이것저것 묻는 동기에게 아무런 말도 안했다. 노트 한번 보여주지 못했다. 퇴근길에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해보지도 못했다”며 “그 당시 저는 너무 죽을 것처럼 힘들었고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그 이유로 동기를 방임했다. 너무 미안하다”며 흐느꼈다.

 

“저도 의사입니다”라고 운을 뗀 사회진보연대 김태훈 정책위원은 경찰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지적과 함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 정부 가이드라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은 “경찰 발표에서는 증명가능한, 흔히 말하는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없었고 발표했다. 하지만 태움은 제대로 된 인력을 갖추지 못해 업무가 과중되는 것,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신병에게 총 쏘는 교육없이 전쟁터에 내보내는 상황이야 말로 태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해결책은 충분한 인력충원과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 구축, 정부 차원에서 간호 교육 체계를 책임지고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아산병원 역시도 유가족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며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음에도 정부 대책은 모호한 가이드 라인이나 수가 얘기만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 서울아산병원 성내천 다리에는 故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하얀 리본들이 달려있다. 간호사들은 박 간호사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라며 '나는 너였다'고 말한다. © 박영주 기자

 

김 위원은 “수가는 병원매출로만 가지 간호사들에게 돌아가진 않는다. 정부가 형식적인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인력 기준에 대해 수립해야 한다. 중환자의 경우 환자 1명당 간호사 1명이 배정돼야 정상인데 아산병원이 국내에서 가장 큰 병원임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선 아산병원부터 시범적으로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김 위원은 “제 여자친구도 간호사였고 사촌여동생도 간호사다. 한번은 둘이 ‘차가 지나가면 뛰어들어 부딪히면 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며 맞장구를 치는 것을 보고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간호사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며 “故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계기로 아픔만 공유해선 안 된다. 정말 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태움은 착한 사람들까지 가해자로 만들고 크게는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태움은 결코 간호사 개인 인성의 문제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한 간호사를 죽음까지 몰고 가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와 왜곡된 병·의원의 진료 시스템이 범인이다. 

 

그렇기에 간호사들은 말한다. “나도 너였다”라고.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간호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 간호사들이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 경력단절 간호사들도 나약해서 일을 그만둔 것은 아니라 살기 위해 그만둔 것이다. 우리는 살고 싶다”고 외쳤다. 

 

간호사들은 지금도 동료와 후배를 채찍질하고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태움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살아남고 있다. 태움의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태움은 끊임없이 대물림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병‧의원들, 간호사협회와 행동하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태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故박선욱 간호사 같은 사례는 또다시 나타날 수 있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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