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세상이 아주 잘못되고 있다

손봉호 | 기사입력 2018/03/21 [14:36]

[손봉호의 시대읽기] 세상이 아주 잘못되고 있다

손봉호 | 입력 : 2018/03/21 [14:36]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나는 지금의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돈과 기술이 우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이나 기술 그 어느 것도 그 자체로 나쁘지는 않지만, 우상화되면 위험하다. 그 둘은 모두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기초해 있고, 짐승과는 달리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으므로 쉽게 도를 넘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좀 더 큰 물리적 힘을 행사하고 싶고, 더 편리하게 살기 원하므로 기술에 대한 욕구에는 한이 없다.

 

돈에 대한 욕망은 아주 옛날부터 문제를 일으켜 왔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더 커져 버렸다. 문화가 세속화되고 물질주의가 팽배해지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거의 없어졌다. 이제는 명예나 권력뿐 아니라 친구, 이웃, 배우자조차도 돈이 있어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고등 종교의 성직자들도 헌금을 많이 거두면 성공했다 한다. 기술과 돈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기술이 있으면 돈을 벌고, 돈이 있으면 새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안전보장, 질병 치료, 쾌락 등도 모두 돈과 기술로 가능하므로 그 둘은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모든 것을 휩쓸어 가고 있다.  

 

낙관주의자들은 기술이 발달하면 힘 드는 일, 귀찮은 일은 모두 기계에 맡기고 사람은 넉넉한 여유를 즐기며 재미있고 창조적인 일만 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그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경쟁으로 말미암아 그런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인류의 절대다수는 그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우선 실업자가 엄청나게 양산될 것은 뻔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실업자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지만 사라지는 일자리가 더 많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조차 대체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의사, 변호사, 판사, 교육자들조차 상당수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측된다.

 

실업자가 되어 본 사람은 실업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스스로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끼는 것만큼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자긍심, 존엄성이 심각하게 상처를 받는다.

 

상대적 박탈감이 대부분의 사람을 괴롭힐 것이다. 과거의 경험과 인간의 성향으로 보아 수요에 따라 공급하는 완벽한 사회주의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기술과 자본을 가진 소수는 큰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그 부자들의 심부름꾼이 되어 삯을 받든지 던져 주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살게 될 것이다.

 

영국 구호단체 옥스팜(Oxfam)은 다보스 포럼에서 2015년에는 인류의 1퍼센트가 전 세계 부의 99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라고 발표하더니, 2016년에는 세계 갑부 62명이 인류의 절반이 가진 부만큼 소유하고 있다고 했고, 2017년에는 세계 갑부 8인이 소유한 부가 전 인류의 가난한 절반이 가지고 있는 부와 같다고 주장했다. 계산에 오류가 있다는 이의가 제기되나,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그동안 전 인류가 거의 절대선처럼 지키고 추구했던 민주주의도 위기로 몰고 있다. 2016년에는 민주주의 역사가 가장 긴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하고, 민주주의의 모형으로 인정받던 미국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모두 민주적인 방법으로 내린 결정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다수의 결정은 항상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믿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민주주의가 집단 이기주의의 모태요 방패막이가 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두 사건은 자기들 나라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 간의 양극화를 확대할 것이다. 

 

부요와 편리, 쾌락에 대한 현대인의 지나친 집착으로 도덕적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문화의 세속화로 강화된 인간의 동물적 욕망은 양심을 마비시키고 이성을 도구적 합리성으로 타락시켜 모두 자신의 이익만 전부로 여기고 다른 사람,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는 약하게 만들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상당 부분 거짓말로 가능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이 말은 진실이나 진리가 더는 중요하지 않거나 영향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질서는 불가결하기에 강제력을 행사하는 법이 점점 더 많이 동원되고 있다. 법의 숫자는 늘어나고 처벌의 수위도 높아지며 판사, 검사, 변호사의 수도 늘어나고 그들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이 내는 세금 상당 부분이 질서유지에 사용되고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규격화되며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폭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점점 심각해지는 환경오염도 큰 걱정거리다. 전기 자동차나 신재생 에너지 등에 희망을 걸 수 있으나 이미 곳곳에서 사막화가 일어나고 기후가 이전과 같지 않다. 지나친 소비가 만들어 낸 재앙이다. 환경오염의 우선 피해자는 가난한 사람이며 가난한 나라다. 인류는 자연환경 파괴로 말미암아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자국 중심주의적 국제 경쟁으로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가 소홀히 다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 모든 재앙은 궁극적으로 자연과학과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닫힌 세계관(Closed World-View) 때문이라고 나는 진단한다.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삶의 목적은 행복이고, 행복이란 주어진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서 오는 쾌락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욕망 충족에 근거해서 형성된 오늘의 세계질서를 나는 “에로스 질서”라 부른다. 《아가페와 에로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98)를 쓴 니그렌(A. Nygren)은 아가페를 자기중심적인(ego-centric) 욕망에 근거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아가페는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의 이익’이나 ‘의’가 아니라 ‘이웃의 번영’이 목적이다. 에로스 질서는 현실이지만, 아가페 질서는 이상이며 당위다. 아가페는 얼핏 보면 매우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이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에로스 질서는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밖에 없다. 반면 아가페 질서는 인류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대안이다. 

 

아가페는 욕망의 절제를 요구한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욕망 절제가 없는 짐승의 세계는 힘의 논리에 의한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질서가 유지되지만, 인간은 욕망을 절제함으로 짐승보다 우위에 서고 정의의 원칙으로 질서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오직 이 세상에서 모든 행복을 찾아야 하는 차세(此世) 중심적 세계관에서는 욕망을 절제할 동기와 동력이 약하다. 기껏해야 도구적 합리성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오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능력이며 전략이지, 공동번영과 평화의 전략은 아니다.

 

점점 강해지고 있는 이기적 욕망과 점점 약해지고 있는 절제 능력 때문에 정의감과 동정심, 합리성 등 인간에게 주어진 도덕적 자원이 무력해지고 있다. 세계화로 조금씩 개선되던 국가 간의 평등과 정의도 최근 다시 역주행을 시작했고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아가페 질서를 추천하는 것을 기독교의 종교적 이기주의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절제에 근거한 희생과 봉사가 전제되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세속적 이익도 개입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가르침이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사랑의 논리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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