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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문화로 세상보기] 셰익스피어의 가장 매력적인 악역, 리처드 3세

정재영 청소년기자 | 기사입력 2018/02/27 [10:52]

[18세, 문화로 세상보기] 셰익스피어의 가장 매력적인 악역, 리처드 3세

정재영 청소년기자 | 입력 : 2018/02/27 [10:52]

▲ 정재영 청소년기자 (용인외대부고 2학년)

뒤틀린 영혼이 왕좌를 위해 칼을 뽑았다. 그 칼은 형제, 조카, 아내, 그리고 한때 자신에게 충성스러웠던 신하들을 향했다. ‘리처드 3세’는 완전한 악인이 되고 싶다. 자신의 선택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지만 목표를 이룰 때까지 양심은 질투와 증오로 덮어 숨겨버린다.

 

결국 엄청난 살육으로 그는 왕이 되지만 버렸다고 생각했던 양심은 끝까지 그를 괴롭힌다. 주변에 대한 불신,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자기 자신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가 리처드 3세를 몰락시킨다. 

 

주인공 리처드 3세의 독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연극은 그가 택한 악인과 증오했던 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지나가는 개까지 으르렁거릴 정도로 가장 낮은 곳에서 무시 받던 리처드는 자신의 뒤틀어진 몸에 대한 증오와 형에 대한 질투 때문에 가장 높은 곳을 욕구하기 시작한다. 꼽추이기 때문에 외형이 아름답지 않지만 리처드에게는 화려한 언변이 있다.

 

그는 혀를 이용해 왕관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적들을 한명 한명씩 죽여 나가기 시작한다. 그에게 지목되는 의구심과 비난들은 자기 자신을 더욱 낮추며 의심을 피한다. 하지만 계략이 진행될수록 그의 결핍이 이성보다 먼저 나오고, 이 때문에 더욱 많은 적을 만들게 된다. 왕좌를 찬탈하는 순간 그의 손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묻어있고, 등 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저주가 따라오고 있다.

 

 

왕좌에 앉은 리처드 3세는 왕권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위험이 될 만한 존재들은 일찌감치 없애버리면서 신하였던 사람을 협박해 배신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핍을 충족시켰다고 생각해 뒤를 돌아본 리처드에게 남은 건 군대를 모으고 있는 적과 자신을 원망하러온 형들, 조카들, 신하들의 유령들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만하지만, 한 충신 ‘스탠리 경’의 선택으로 인하여 무너지게 된다. 정신상태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전쟁터의 긴박한 상황 속, 리처드 3세는 가족을 죽여가면서 까지 원했던 왕국의 의미를 망각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전쟁터에서 허무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죽은 사람들과 산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하며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은 리처드 3세를 피해자로나 피의자로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한 인간 안에 작용하는 다양하고 극단적인 생각들의 결정체를 셰익스피어의 언어로 표출해낼 뿐, 고전 정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10년 만에 연극계로 복귀한 황정민은 ‘리처드 3세’로써 극을 이끌어간다. 능청스러움과 유머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는 동시에, 잔혹한 장면에서는 광기를 부각시키며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수많은 악역들 중에서도 매력이 뚜렷한, 잔혹한 살인마와 뒤틀려진 불쌍한 영혼의 경계에 서있는 ‘리처드 3세’를 미워할 수 없다. 리처드 3세는 악인과 선인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다.

 

완벽한 악인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양심을 묵살시키고, 자기 정당화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이러한 인물 내부에서 상충하고 있는 감정들은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그를 마냥 악인이라고 단정 짓기 애매하게 만든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황정민을 받치는 원캐스팅 배우들의 역량들 또한 매우 뛰어나다. 리처드가 이끌어가는 분위기를 빨리 파악하고 따라오거나 이에 반박한다.

 

연출은 필요한 것들만 보여주며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어있다. 다양한 영상들과 효과들을 사용한 시도도 색달랐지만, 극의 빠른 호흡에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는 보다 진중하고 조용하다. 화려하고 시끄러운 연출로 극의 주제의식이나 연기를 보충하려고 하지 않는, 관객이 오로지 극의 호흡에만 집중할 기회를 준다.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색다르게 재탄생한 ‘리처드 3세’는 한없이 매력적이다.

 

감수=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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