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랑이 열어놓은 천국과 지옥, 연극 ‘라빠르트망’

영화 ‘라빠르망’이 연극으로…무대에 펼쳐지는 사랑의 민낯

이영경 기자 | 기사입력 2017/10/25 [17:42]

[리뷰] 사랑이 열어놓은 천국과 지옥, 연극 ‘라빠르트망’

영화 ‘라빠르망’이 연극으로…무대에 펼쳐지는 사랑의 민낯

이영경 기자 | 입력 : 2017/10/25 [17:42]

사랑만이 가능케 하는 어떠한 가능성과 그로 인해 드리워질 어둠에 관해서는 모르는 바 아니다. 인간이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사랑이며, 그 천국을 맛보기 위해서는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지옥문도 함께 열림을 감안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의 세계를 알 듯 말 듯 했던 90년대 후반 접하게 된 영화 ‘라빠르망’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아한 대사와 몽환적인 화면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희망이나 화합을 암시하는 아무런 제스처 없이 파국의 순간에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거짓말과 배신을 반복하던 두 남녀가 공항에서 다른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이상한 미소를 짓는 마지막 장면이 아직 어렸던 가슴에는 너무도 배려 없는 처사였다.

 

▲ 연극 ‘라빠르트망’ (사진제공=LG아트센터)    

 

미스터리한 전개, 현재와 과거의 교차편집에서 오는 리듬감이 보는 재미를 더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 것은 배우의 얼굴이었다. 기괴하면서도 슬픈 로만느 보링거의 눈빛은 실로 엄청나며, 뱅상 카셀 특유의 페이스가 이만큼 잘 활용된 영화는 그 후로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몸’으로 소비되었던 여신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단발머리로 등장하는 모니카 벨루치는 이러나저러나 뭘 해도 그냥 여신임을 증명했다. 그저 구둣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뿐인데 여자가 봐도 반할만 하다.

 

내용은 언뜻 복잡하다. 삼각관계인 듯하지만 사각관계이고, 따지고 들면 육각관계다. 영화는 보석상에서 반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막스로부터 시작된다. 검소하지만 귀족적인 반지, 반짝거리나 상처 나기 쉬우니 보기만 하는 것이 좋은 반지, 흐리지만 빛을 비추면 별처럼 광채가 빛나는 반지. 세 개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막스는 세 여자 사이를 오간다. 뮤리엘과 약혼한 그는 레스토랑에서 과거 홀연히 사라졌던 연인 리자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녀를 쫓는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리자에 대한 퍼즐이 맞춰지고 그 중심에는 모든 의문의 키를 쥐고 있는 알리스가 있다. 영화는 올해 초 국내에서 재개봉된 바 있으며, 지난 18일 고선웅 연출에 의해 연극 ‘라빠르트망’이 LG아트센터에서 개막했다.

 

연극은 영화의 잦은 플래시백으로 설명되는 추리 방식을 취할 수 없으므로 과거부터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관객이 갖게 되는 궁금증은 줄었으나 긴장감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알리스의 복잡한 내면과 거짓말, 그로 인해 엉켜버린 인물의 방황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마음과 마음이 어긋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내면의 파열음, 사랑에 있어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게 되는 순간들이 잘 포착돼 있으며,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은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에너지와 감각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서 새삼스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 어쨌든 모두가 애처롭도록 사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 연극 ‘라빠르트망’ (사진제공=LG아트센터)    

 

영화에서는 단절되고 오해하는 공간으로 아파트(L’Appartement)가 활용된다. 문 밖과 문 안의 진실이 다르며 때로는 카페나 공항 등의 유리가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연극에서는 회전무대 그리고 빨간 문을 통해 장소와 인물들의 심리를 속도감 있게 전달하며, 모던하면서도 절제된 조명과 영상, 음악이 이 연극만의 아우라를 완성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인물들 모두가 일종의 절망을 가진 상태고 암전 없이 회전무대는 자주 돌아가며 전개는 빠르다. 종종 유머가 이완 역할을 하지만 여백 없이 달리는 인물들이 바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가장 궁금했던 캐스팅에 관해서라면, 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은 다소 실망할 수 있으나 영화와 연극이라는 장르의 차이를 이해하고 본다면 무리가 없다. 몸의 언어로 감정을 전달하는데 탁월한 김주원(리자 역)의 몸짓, 핸섬한 외모에 유들거림과 천진함을 함께 가지고 있는 오지호(막스 역)의 표정은 이 연극과 잘 어울린다. 특히 연약한 몸으로 꿋꿋하게 연극의 중심에 선 채 온갖 거짓말을 이해하게 만든 김소진(알리스 역)의 눈빛과 목소리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언제나 안정적이기에 안심이 되는 조영규와 장소연의 연기를 비롯해 이정훈, 조영선, 배보람, 김용래가 무대를 단단히 채웠다. 연출 고선웅/ 각색 오세혁·고선웅/작곡 장소영/무대디자인 오필영/영상디자인 이원호/조명디자인 류백희/의상디자인 최인숙/안무 홍세정/소품·분장 장경숙/2017.10.18.~2017.11.5./LG아트센터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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